등록 : 2018.12.23 11:51
수정 : 2018.12.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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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노위 법안심사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귀대기'를 하고 있는 재계 협회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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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_산안법 논의한 21일 국회 풍경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심사 본격화
김동철 “법안 지연 ‘야당 탓’, 사과해야” 반발
이장우는 “정부안은 과잉 입법” 공개 반대
여야 이견 속 고성 오가…24일 재논의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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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노위 법안심사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귀대기'를 하고 있는 재계 협회 관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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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621호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회의실이다. 21일 621호 앞은 분주했다. 오전엔 공청회가 열렸다. 지난 11월1일 정부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2016년 5월 ‘구의역 김군’ 사고가 발생한 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법안이 여럿 발의됐지만 2년7개월 동안 진척이 없었다. 최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 김용균(24)씨가 숨지자 국회에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뭐 했냐”는 것이었다.(
▶관련기사: ‘위험의 외주화’ 방지 법안이 국회에서 ‘주변화’되는 과정)
여야는 산안법 개정안을 오는 27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 때 처리하기로 합의해 이날 서둘러 공청회를 열었다. 오후엔 법안심사를 위한 소위가 열렸다. 이날은 김용균씨가 숨진 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621호는 공간이 작다. 20명가량 둘러앉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는 구조다. 오전 10시부터 이곳은 공무원들과 기자들로 꽉 찼다. 한 관계자는 “환노위에 이렇게 사람들 많이 몰린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본부장과 민주노총 실장이 테이블 끝에 나란히 앉았다. 민주노총 실장은 ‘민주노총’이 적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의원들 입장을 기다리는 사이 임이자 고용노동소위 위원장(자유한국당)이 민주노총 최명선 실장에게 물었다. “안전보건 관련해서 몇년 정도 하셨나요?” 최 실장이 “15년”이라고 답하자 임 위원장은 “대단하셔”라고 말했다. 10시7분 소위가 개회하자마자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했다.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어제,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 나가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에서 탄력근로제 문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법안 논의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연계가 되다 보니 산업안전보건법이 논의가 안 되고 있다고 야당 탓을 했다. … 공청회가 끝날 때까지 우원식 전 원내대표가 와서 사과하라. 본인이 안 하겠다면 홍영표 원내대표라도 와서 사과하라. 그렇지 않고는 무책임한 여당과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
우 전 원내대표의 사과를 기다리는 상태로 관계자 진술이 일단 시작됐다. 임우택 경총 본부장은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금지에 대해 “금지 대상 하청근로자의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원청 사업주에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는 것에는 “현행 법률을 다 준수하기 어려운데 책임을 확대하면 범법자 양산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준비해온 원고에서 눈을 거의 떼지 않은 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민주노총 순서가 됐다. 최명선 실장은 “사망 사고 발생과 관련해 정부가 입법을 예고했을 때는 하한형(1년 이상 징역)이 있었지만 국회엔 삭제된 채로 들어왔다”며 “처벌 조항의 현장 작동을 위해선 최소한 하한형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부 개정안이 시급하게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발언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는 원고를 거의 쳐다보지 않은 채 의원들을 계속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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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관계자들과 공무원, 기자들로 북적였던 소위 회의장. 진술을 위해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경총 본부장과 민주노총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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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서는 교섭단체 3당이 각각 추천한 교수들의 진술을 듣는 것이었다. 이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기자들은 우르르 빠져나와 621호 앞 복도에 앉아 기다렸다. 일부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기사 작성에 돌입했고 일부는 명상에 잠겼다. 나중에 임이자 위원장에게 공청회인데 비공개로 하는 이유를 물으니 환노위원들의 경우 교수들에게 “이게 맞냐, 틀리냐” 강한 어조로 의견을 묻기 때문에 비공개가 적합하다고 봤다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복도가 조용해진 가운데 기자가 아닌 낯선 이들이 621호 문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방문증을 찬 몇몇 남성은 문틈에 귀를 대고 이른바 ‘귀대기’(비공개 현장인데 문틈으로 몰래 듣기)를 하기 시작했다. 기자들 중 아무도 귀대기를 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목에 건 출입증을 보니 ‘건설협회’ 등 재계 협회 관계자들이었다.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건설업계를 비롯해 재계 사용주에게 책임이 커지니, 진행 상황을 살피러 온 모양이었다. 이들은 기자에게 “우원식 전 원내대표가 혹시 왔다 갔냐”고 ‘취재’하는가 하면 귀대기 도중 분주하게 어딘가에 전화해 “자료를 찾아보라”고 지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낮 12시35분께 621호의 문이 열리고 임이자 위원장이 먼저 나왔다. 방송 카메라에 불이 켜졌다. “공청회 어떻게 들었냐”는 기자들 질문에 임 위원장은 “각 정당에서 추천하신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주 팽팽해서 좀 더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원식 전 원내대표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3시 반에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아까 그 사과 관련 얘기죠?”라며 임 위원장 옆, 카메라 앞에 섰다. “정말 화가 납니다. 야당이 반대해서 안 하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화가 안 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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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가 끝난 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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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심사 소위는 오후 4시에 재개됐다. 시작부터 비공개였다. 복도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김동철 의원이 4시20분께 복도 끝에서 621호 앞으로 걸어왔다. “사과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냐”고 기자가 묻자 김 의원은 “홍영표 원내대표가 전화 와서 사과했고 우원식 전 원내대표는 변명을 했다”고 답했다. 그가 “모두발언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며 들어가더니 회의는 공개로 전환됐다. 기자들이 우르르 들어가자 김 의원이 발언을 시작했다. 먼저 휴대전화를 꺼내 보였다.
“항의 문자가 온다. 한국당이랑 바른미래당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반대한다고….”
한국당 소속 임 위원장이 “우리가 언제 반대했냐”고 묻자 김 의원은 “우원식 이런 사람들이 막 얘기하니까 반대하는 것처럼 됐다”고 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홍영표 원내대표가 사과의 뜻을 전화로 전해왔다. 그러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심의를 논의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민주당의 사과가 있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그래서 다시 산업안전보건법 심의를 하도록 말씀드린다”고 했다.
김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이번엔 이장우 한국당 의원이 마이크를 켰다. 그는 오전 공청회 때는 참석하지 않았다가 오후에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이 의원은 “정부의 전부 개정안을 많이 검토했는데 굉장한 과잉 입법이고 개념이 아주 모호하다”며 “국가경쟁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부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 의원은 이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52시간제 강행 등으로 고용 시장이 완전히 엉망이고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이렇게 하다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며 “정부가 낸 전부 개정안을 도저히 심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시47분 회의는 다시 비공개로 전환됐고, 몇분 지나지 않아 정회됐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이 양반이!” “누가 양반이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싸움이 난 모양이었다. 이장우 의원은 복도로 나와 기자들에게 “정부안이 법체계나 안전성을 너무 훼손하고 문제가 많아 지금 전체를 논의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작이 부족하다”고 했다. 회의가 다시 재개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6시에 산회가 선포됐다. 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전부 개정안으로 하자고 하고, 나머지 야당은 현행법 개정안으로 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라며 “일단 내용을 심사한 뒤 어떻게 담을지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을 담은 ‘전부 개정안’ 대신 현행법 일부만 고쳐 처리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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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 요구로 잠시 공개로 전환된 소위 회의. 벽 상단에 역대 환경노동위원장들 사진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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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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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황을 종합해 기사를 마감하고(
▶관련기사: 한국당 이장우 “나라 망하게 생겼다”…‘위험 외주화 방지법’ 심의에 몽니) 사회부 기사들을 보니 이날 김용균씨 동료들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청와대까지 촛불 행진을 벌였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환노위 소위는 24일 다시 열린다.
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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