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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5 16:37 수정 : 2018.05.16 07:55

정치BAR_송경화의 올망졸망

① 쭈뼛쭈뼛 자유한국당
② 박선숙 의원의 ‘커밍아웃’
③ 한국당 “이상돈을 잡아라”
④ 평화당 vs 바른미래

14일 여야 지도부는 하루종일 ‘진땀’ 협상을 벌였다. 이날 저녁 국회 정상화의 극적 타결에 이르기까지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숨겨진 몇 가지 장면이 있다. 향후 국회 운영 향배와 관련해 몇 가지 ‘힌트’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14일 국회 본회의장 문 앞을 막고 의원총회를 진행하다 점심 시간을 맞아 김밥을 먹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송경화 기자

① “야당은 오랜만이라” 쭈뼛쭈뼛 자유한국당

14일 오전 자유한국당은 국회 본회의장 문 앞에 스티로폼을 깔며 ‘결전’을 준비했다. 당직자들은 붉은 글씨로 ‘특검 빠진 본회의 강행, 의회독재 협치파괴’라고 적힌 손팻말도 준비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나….” 8시54분께 3선 김광림 의원이 농성장에 ‘입성’했는데 영 어색해보였다. 9시16분 김성태 원내대표가 도착해 더불어민주당 규탄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됐다. 의원들은 이후 릴레이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9시45분쯤 되자 잠시 발언이 끊겼다. “아무도 안하신다고 해서…” 김영우 의원이 주위를 살피다 조심스레 일어나 발언의 공백을 메웠다. 본회의장 문 앞까지 막아섰지만 ‘홍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원내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보좌진을 통해 비상 의총 현장 상황이 실시간, 수시로 국민께 전파될 수 있도록 에스엔에스(SNS)를 활용해주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점심 시간이 다가오자 ‘대오 이탈’이 우려됐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김밥과 샌드위치가 준비돼 있다”며 “개별 일정을 중단하고 지속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점심시간 30여명의 의원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김밥을 먹었다.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가 되자 규탄 발언 사이 공백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농성 시작 초반만 해도 ‘몸싸움 예상’ 등의 기사들이 나왔지만, 오후 5시 민주당 의원들이 실제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스티로폼 위에 그대로 앉아 구호만 반복했다. 김성원 의원은 의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의원님들. 피켓을 더 높이 들어주십시오!”

② 박선숙 의원의 ‘커밍아웃’

민주당 입장 20여분 뒤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이 홀로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선의 비례대표 박선숙 의원이었다. 같은 시각 바른미래당은 본회의 참여 여부를 두고 국회 안에서 한창 의원총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박 의원은 당과 분리돼 개별행동을 한 것이다.

옛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박 의원은 안철수 당시 당대표 주도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시작되자 당 일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 환경부 차관 등을 지낸 그가 영남 기반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 의견일 것이라는 게 당내 지배적인 해석이었다. 하지만 박 의원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의정활동에만 전념했다. 안철수 전 대표와 가까웠던 관계 때문일 것으로 추정됐다. 통합 완료 뒤 바른미래당 이상돈·박주현·장정숙 의원이 ‘비례대표 3인방’으로 불리며 민주평화당 활동을 할 때도 박 의원은 그들과 손을 잡지 않았다. 평화당은 국민의당에서 이탈한 통합반대파가 만든 신당이다.

박 의원은 대신 의원총회에 불참하고 ‘당론’을 거부하며 잠행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앞서 야3당 의원 157명이 공동 발의한 드루킹 특검 법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뒤에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지지 및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관계발전 이행 촉구 결의안’을 당과 별개로 대표발의했다. 그가 언론의 이목이 최고로 집중된 이날 홀로 본회의장에 들어선 것을 두고 바른미래당 안에서는 ‘본격적으로 커밍아웃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③ 자유한국당 “이상돈을 잡아라”

평화당의 본회의 참석이 확정되기 전, 여야는 치열한 표계산을 벌였다. 정의당과 평화당 등이 모두 참여할 경우 민주당은 최대 149석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재적 과반 동의’ 기준은 147석이었다. 민주당 입장에선 정족수 확보가 아슬아슬했다. 거꾸로 한국당 입장에선 한 두 명만 범여권에서 이탈해올 경우 147석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날 오후 4시 본회의 소집을 예고한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 4명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의 방을 긴급하게 찾았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 의원을 상대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말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임이자, 문진국, 장석춘, 신보라 의원 등은 이상돈 의원과 함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해 친분이 있는 의원들이었다. 오후 2시부터 이 의원 방에 하나 둘 모여든 이들은 5시까지 머물며 이 의원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이들을 뒤로 하고 평화당 의원총회에 참여하며 결국 여권과 발을 맞췄다.

손금주, 이용호 의원에게도 오랜만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 과정에서 이탈해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호남 의원들이다. 여야 의원들 다수는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각각 본회의 참석과 불참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의원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기 전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여야 지도부가 막바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용호 의원이 본회의장을 잠시 벗어날 뻔 하자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며 막았다. “이 의원님. 어디 가세요. 위수지역 벗어나시면 안 됩니다!”

이날 저녁 6·13 지방선거 출마 국회의원 4명에 대한 사직서가 처리되면서 민주당은 118석, 한국당은 114석이 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총 12석이 새로 선출된다. 하반기 국회에서도 이번처럼 ‘아슬아슬한 표대결’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4일 오후 5시15분께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을 만나 밀담을 나누고 있는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송경화 기자
④ 평화와 정의 vs 바른미래…캐스팅보터 경쟁

민주당은 평화당과 정의당이 함께 만든 교섭단체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을 ‘우군’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평화당은 이날 오후 5시, 6시 등 본회의장 입장 결정 시각을 조금씩 늦춰가며 물밑 협상을 벌였다. 전북 군산 지엠(GM)대우 예산 증액 등이 논의 대상이었다. 20석의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경우 민주당은 의결 정족수를 간신히 채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시각 30석의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밀당’을 벌였다. 바른미래당은 특검법에 드루킹 사건에 대한 검경의 수사 축소, 은폐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난색을 표하자, 바른미래당은 “검경 수사 축소, 은폐 의혹을 명문화하지 않더라도 브리핑에서 함께 발표하는 것으로 합의하자”고 대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이 역시 거부했다. 평화와 정의, 바른미래당 가운데 어느 한 당이 먼저 들어갈 경우 정족수가 충족되는 상황이었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틈틈이 ‘옛 식구’ 평화당 의원들을 접촉하며 공동 행동을 제안했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에 입장한 뒤 김 원내대표는 유성엽 평화당 의원을 만나 밀담을 나눴다. 유 의원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자기 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한참 얘기를 나눈 뒤 유 의원은 김 원내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 나도 우리 당 설득해볼게. 그런데 이래놓고 바른미래당만 본회의장 먼저 들어가버리는 건 아니지?”

14일 오후 6시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는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 박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이지만 민주평화당 활동을 하고 있다. 평화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 뒤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송경화 기자
오후 6시 의원총회를 마친 평화당은 결국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의원들은 ‘대우조선 살린다고 군산조선소 죽이고, 창원 부평 살린다고 군산지엠 죽이고’라고 적힌 손팻말을 하나씩 들었다. 평화당이 본회의장에 들어가면서 149석으로 ‘재적 과반’이 됐다. 정족수 충족의 ‘꼭지’를 평화당이 딴 것이었다. 이후 자유한국당과 여권의 협상도 급물살을 타면서 결국 18일 추경·특검 동시 처리가 합의됐다.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마지막에 입장하게 됐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하반기 원구성에서 국회 부의장직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민주당의 지원 여부가 주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화당은 존재감을 입증했지만 최종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다. 애초 평화당은 ‘21일 추경·특검 동시처리’를 전제로 민주당에 협조했는데, 최종적으로 타결된 날짜는 18일이었다. 평화와 정의에선 정의당 소속 노회찬 원내대표가 이 협상에 참여했다. 평화당은 18일에 본회의를 열 경우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집중돼야 할 관심이 분산되고 추경 심사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날짜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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