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8 19:53
수정 : 2017.07.28 20:45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일본의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오다 마코토의 사후 1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단순한 추모행사라기보다는 그의 사후 10년을 계기로, 그의 문학과 반전평화운동이 현재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띨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한국, 일본, 독일의 지식인과 시민들이 경험과 식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를 포함한 한국의 참석자들은 지난해 서울에서 있었던 제1회 한·일 식견교류에 이은 두 번째 포럼을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고, 도쿄와 오사카에서 각기 다른 주제로 발표와 토론에 참여했다. 그 자리에는 생전에 ‘일·독 평화포럼’을 통해 일본과 독일의 평화운동에 연대해온 오이겐 아이히호른 독일평화포럼 대표를 포함한 독일의 시민들도 참석했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과 일본, 독일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생각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생전의 오다 마코토가 작가이자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약칭 베평련)을 주도하면서 반전평화운동을 이끈 정력적인 평화운동가였기 때문에, 그날의 자리에서는 민주주의 문제가 뜨거운 의제가 되었고, 특히 한국의 ‘촛불혁명’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은 ‘촛불혁명에 대하여’란 대독된 발표문을 통해 한국의 촛불혁명 의미에 대한 일본 보수언론 일각의 뒤틀린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논의를 펼쳤는데, 토론 과정에서도 일본과 독일의 시민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던진 질문은 촛불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였다.
토론에 참석한 일본 측 시민들은 한국의 촛불혁명이 위기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극적으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사실 놀랍다는 반응을 전했다. 특히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가 극적으로 전개되던 시점에 한국에 체류하면서 상황을 주목했던 저널리스트 오카다 오사무의 견해가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만일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10년에 이어 보수 집권이 5년 더 이어졌다면, 한국 역시 일본의 ‘55년 체제’와 유사한 장기 보수 정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15년이라는 정치적 시간이 시민들의 의식·무의식에 가할 체화된 패배주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였다. 15년의 시간은 청년이 장년이 되는 장구한 시간일 텐데, 이 시기 전체를 압도적인 보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것도 장기불황의 상황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게 된다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오카다 오사무의 예측이었을 뿐만 아니라, 촛불혁명에 참여했던 한국의 시민들이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과 그것의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미래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평화 구축을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원자력자료정보실’의 공동대표인 야마구치 유키오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기조로 전환할 것을 선언한 것에 주목했다. 이것은 후쿠시마에서 재난적 상황을 조우하고도 원자력 발전체제로 회귀하는 일본에 큰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전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주의야말로 거대한 전환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강인하게 연합된 시민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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