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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시절이 그렇다 보니, 술자리에 가면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주자에 대한 말을 많이 듣게 된다. 자주 보진 않지만 오래 봐온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져 간혹 격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특정 주자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그의 인품에 관한 존경의 표현이다. 순수함, 올곧음, 솔직함 등등이 그런 표현에 속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주자들은 그런 것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다는 발언이 당연히 뒤따른다.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질까봐 대개 그냥 듣는 편이지만, 드물게 반박하기도 한다. 물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정치지도자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그를 선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상식의 기준으로 용인되기 힘든 정도의 비리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또한 공존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 성품이 아니라 능력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계는 복잡하고 지루하고 시시해졌다. 현실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정치가 복잡하고 지루하고 시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종적 해결(나치의 용어이기도 했다)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의 수를 줄이고 갈등의 수준을 낮추는 정도가 정치의 최선이다. 순수의 강조는 능력 경쟁이어야 할 선거를, “세상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기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쓰는”(해리 프랭크퍼트) 진정성 경쟁, 미학적 경쟁으로 바꿔놓는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중에서 누가 더 순수한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겐 트럼프가 그렇게 보인다. 무식하고 야만적이지만 적어도 클린턴보다는 솔직하고 투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했다. 클린턴이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이라는 건 자명했지만, 무언가를 계속 감추는 것처럼 보였고 미국 경제를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가고도 징벌받지 않은 월가로부터 트럼프보다 훨씬 더 많은 선거자금을 받았다. 미국 국민의 절반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들은 진정성 있는 트럼프가 아니라 유능하고 정치적인 클린턴을 선택했어야 한다. 영화 밖에선 피하고 싶은 이름이었지만, 그 절반 중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지난 8월 미국 월간지 <에스콰이어>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는 스타일”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때때로 옳지 않은 말을 하기도 하고 그의 말에 전부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그리고 대선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대통령 트럼프,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썼다.) 이스트우드는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훨씬 순수한 사람, 진정성 있는 인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판단이 옳다 해도 그의 선택은 틀렸다. 그는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싸워 쟁취할 이상이 존재하던 시대, 그러기 위해 대담성과 용기와 명예가 필요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 자동차 도난 방지나 주거 침입 방지보다 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요청받던 시대에 대한 향수”(앤드루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가 그의 영화를 빚어냈고, 그의 정치적 선택에도 작용했을 것이다. 1980년대의 한국에서 20대를 보낸 나도 그 향수를 벗어날 수 없고, 그 향수가 담긴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앞으로도 좋아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향수를 현실의 정치적 선택의 기준으로 삼은 이스트우드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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