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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3 19:20 수정 : 2006.03.02 01:38

가와치 이치로 미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5일 김명희 을지의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의무”라고 말했다. 김명희 을지의대 교수 제공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⑥ 미국의 건강 불평등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다. 하지만 부는 갈수록 소수에게로 집중돼 오늘날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소득, 재산, 생활수준의 불평등은 건강불평등을 깊게 만든다. 미국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뤄 온 가와치 이치로 하버드 대 교수를 지난 5일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실에서 김명희 을지의대(34) 교수가 만났다. 가와치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민간 의료보험 도입에 대해 “이윤을 창출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건강증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미국을 따라 하려는 그 어떤 (보건)시스템도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

인터뷰-가와치 이치로 하버드 보건대학원 교수

-건강 불평등 문제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것이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건강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요한 질병과 위험 요인도 바뀌었는데 빈곤 계층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고 있다.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비만이 부유층의 질환이던 시절, 전염병 때문에 사망률은 빈곤층에서 훨씬 높았었다. 이제 만성질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에 이르자, 그 위험요인들이 또다시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되고 이들의 사망률이 여전히 높은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건강과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사회경제적 요인이 건강·질병의 근본 원인”

-이런 주장은 건강 불평등은 꾸준히 있어 왔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건강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 의미에서 건강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지만, 절대적 격차는 사실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최빈곤층에서도 평균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 불평등과 관련해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동네에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 가게가 없고,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이 없다면 아무리 지식이 있어도 어떻게 좋은 걸 사먹고, 운동을 할 수 있겠나? 교육 수준이 높고, 돈과 시간을 비롯한 자원이 충분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실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어느 하버드 교수는 왜 시민들이 하루 30분도 운동을 하지 못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교수는 먹고 살기 위해 따로 점심시간이 없고, 마땅히 씻을 곳도 없는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건강 불평등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서 다른 선진국들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보건의료 비용을 지출하고도 여전히 국민의 13~14%는 의료보험조차 없다. 미국을 모델로 쫓아가려는 어떤 사회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건강 불평등 수준이 특히 심한 이유는 어디서 찾을수 있나.

=흑·백인종 간 건강 격차는 150년 동안의 노예제도와 이후 150년간 이어진 인종 분리의 역사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불평등에 대한 미국인들의 놀랄 만한 너그러움도 중요한 이유로 들 수 있다. 개인주의, 큰 정부를 싫어하는 반국가주의, 세금 혐오 등도 건강 불평등의 기반이 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 이뤄진 대표적인 건강 불평등 해소 정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메디케어(65살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공보험)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급여) 사업이다. 빈곤층이나 노인에게 의료 이용의 접근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빈곤 예방에 큰 구실을 했다. 어린이들의 발달 교육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 사업의 경우, 어린이 사망률의 전반적 감소는 물론 흑·백인 간 건강 격차를 줄이는 데도 기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 영리법인화·민간 의보
건강증대에 아무 도움 안돼”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⑥ 미국의 건강 불평등
-미국은 건강 불평등에 관한 연구로 치자면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최고 수준인데도 정책개발이나 실행은 한참 뒤처져 있다. 연구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기업의 이해를 들 수 있다. 많은 기업들, 특히 담배 산업은 건강 불평등으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다. 담배 광고판들은 빈곤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건강 불평등을 감소시키려는 모든 노력들에 대해 이런 기업들은 반격을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매사추세츠주에서는 1993년 주민 투표를 통해 담뱃세를 40센트 인상시켜 담배 소비가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약 5개월 뒤, 담배 회사들은 정확히 40센트 가격을 낮추어 그 효과를 무위로 만들고 말았다. 둘째, 정치인들은 4년 혹은 7년 주기로 선출되는데 건강과 관련된 효과들은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난다는 것이다. 셋째로, 건강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낮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민간 의료보험 도입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 보건의료의 상품화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나.

=이윤을 창출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건강증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 상황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환자 치료가 아닌, 행정 처리를 하는 데 낭비되고 있다. 미국을 따라 하려는 그 어떤 시스템도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 불평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낙관과 열정을 가지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담/김명희 을지의대 교수

가와치 이치로(47) 교수는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탐구하고 강의하는 사회역학자다. ‘하버드 사회 건강센터’ 대표이며,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사회과학과 의학>과 <미국역학회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해 그곳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임상의사로 일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와 관련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그의 책 <부유한 국가, 불행한 국민> 서문에서 그는 “빠르게 심화하는 소득불평등, 지속적인 그리고 늘어나는 빈곤수준, 한국은 미국과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 창립 학술대회 참가차 2003년 한국을 방문해 특강을 했다. ‘친구와 친척이 많고 사교적인 사람이 사회적으로고립된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등 그 동안 280편의 논문 등을 발표했다.


미, 흑인-백인 수명·영아 사망률 큰 차이

막대한 의료비 지출하지만 건강 불평등 심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영아사망률
미국의 65살 미만 연령별 의료보장 미적용자 비율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보건의료비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평균적인 건강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2003년 미국 사회가 보건의료에 지출한 돈은 1조7천억 달러(약 1700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민 1인 당 연간 5671 달러(약 567만원), 국민 총생산의 15%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그러나 평균 수명과 사망률을 기준으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건강 올림픽’에서 미국은 2003년에 기껏 29위를 차지했다. 국민 소득이 미국의 1/10 정도인 코스타리카 (25위), 쿠바(30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나쁜 성적’의 이유를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찾고 있다. 인종과 소득, 교육 수준의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의 심화를 불렀고, 이것이 결국 평균의 저하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보건 지표라 할 수 있는 평균 수명을 살펴보면, 남·녀, 흑·백인 모두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흑인과 백인종 간의 수명 차이는 여전하다.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에 견줘 6년,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에 비해 5년 정도 평균 수명이 짧다.

또 어머니의 인종에 따라 영아 사망률도 큰 차이를 보인다. 백인의 경우 출생아 1천 명 당 5.7명이 사망하는데 비해 흑인은 2배가 넘는 13.6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흑인의 영아 사망률은 중남미의 저개발 국가인 도미니카, 우루과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2003년 현재 65살 미만 미국인의 약 17%가 미가입자인 의료보험 문제도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보험 미가입률은 연방 빈곤선 이하 빈곤층에서 31%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이창곤(팀장), 박주희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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