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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7 19:10 수정 : 2006.01.17 23:13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③ 흡연이 계층을 가른다

#1 막노동꾼인 유아무개(58·남)씨는 40년 ‘골초’다. 소주도 거의 매일 3잔쯤 든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10대 후반부터 담배를 피웠다.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기에 의사는 담배끊기를 권하지만 일거리조차 없는 팍팍한 삶이 좀체 담배를 놓치 못하게 한다. 그에게 흡연은 고단하고 외로운 신세를 잊게 해주는 ‘환각제’ 같은 것이다. 유씨는 “병들고 외로운 신세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적해 나도 모르게 담배에 손이 간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유씨는 15살 무렵 무작정 상경했다. 닥치는 대로 안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뒤늦은 나이인 마흔에 검정고시를 통해 중등·고등 학력을 따기도 했다.

담배는 힘든 삶 버틸 환각제
끊어라는 의사 조언도 ‘공염불’

하지만 고졸 학력은 그를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아내와는 20년전 진작 갈라섰다. 두 딸과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유씨에게 ‘건강을 위해 금연을 하라’는 의사의 조언은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담뱃값이 올라 가끔 담배를 못 살 때는 싸구려 담배와 버린 ‘꽁초’로 버텨보기도 한다. 담배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스트레스를 손쉽게 풀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담배를 끊어보려 하긴 했지만 약을 먹거나 의사를 만나 본 적이 없다. 보건소의 금연클리닉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만 있다.” 다만 그는 “담뱃값이 더 오르면 돈이 없어서 끊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2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사는 홍아무개(50·교사)씨는 몇년 전 금연에 성공했다. 하루 한갑 이상을 피웠다는 그는 주위 동료들이 너도나도 끊어 자신도 끊게 됐다고 말했다. 대졸에 월 250만원을 받는 그는 70년대엔 거북선, 80년대 초엔 태양, 80년대 중·후반엔 솔, 최근까진 디스 등을 피웠다며 담배 이름을 줄줄 댔지만 이젠 모두 과거의 추억이다. 90년대부터 매스컴에서 담배광고가 나오면서 담배가 몸에 안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가족들의 반대도 담배끊기에 한 몫했다고 언급했다. 순전히 개인의 의지로 금연에 성공했다는 그는 보건소의 금연클리닉에 대해선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3서울에서 건축설계사 일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53·남·대졸)씨도 ‘죽고 못사는 애연가’였지만 요즘은 담배 연기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흡연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요인이다. 일자리를 요구하는 ‘실업자 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김씨도 가족들의 반대가 금연에 한 몫했다. 김씨는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등 건강에 안좋다는 걸 아는 아내와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반대를 많이 한 데다 아이들이 크면서 담배 피우는 아버지 모습을 닮을까봐 걱정이 돼 끊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정원경(37·서울 은평구 역촌동·대졸)씨는 요즘 한 병원의 금연클리닉을 다니고 있다. 그도 10년 넘게 담배를 피웠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끊겠다며 병원을 찾았다. 정씨는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는 데다, 8명 정도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나 혼자일 정도로 주변 분위기가 변해 나도 끊을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금연정책 저소득층 영향 미미
담뱃값 인상등 정부 대책 시급

보건복지부는 담뱃값 인상과 보건소의 금연클리닉 운용 등 다양한 금연 정책을 통해 흡연 억제에 나름의 효과를 내고 있다. 실제 90년대 후반 이후 전체 흡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 흡연의 행태는 물론 금연정책에 따른 효과도 학력과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고학력층에겐 흡연의 폐해를 강조한 금연캠페인 등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과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해 내놓은 자료(2004년)를 보면, 학력과 소득 수준에 따라 흡연율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차이가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64살 남성의 경우 소득을 5분위로 나눠 비교분석한 연구에서, 고소득층은 66.04%에서 58.66%로 흡연율이 떨어졌지만 저소득층의 경우 73.28%에서 73.92%로 오히려 늘었다.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하루 평균 타르 흡입량은 360만원 이상의 소득계층은 82.90㎎인데 반해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은 85.53㎎으로 더 많았다.

또 니코틴 흡입량도 360만원 이상 계층은 8.31㎎이지만 200만원 미만은 8.80㎎으로 더 높았다. 이런 흡연의 소득계층별 불평등은 당연히 건강수준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2005년 임준 가천의대 교수의 연구에서 저소득층의 폐암 사망의 위험도가 고소득층에 비해 1.4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진석 충북대 의대 교수는 “금연상담, 보건소의 금연클리닉 등 금연정책이 일반 국민에게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의 흡연 감소를 이끌어내는 데는 제한적인 효과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추가적인 금연지원 사업 등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적인 담뱃값 인상을 저소득층 흡연 감소에 유효한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특별취재팀


계층간 흡연율 격차 해소
금연정책 핵심 목표 돼야

흡연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간 건강수준 불평등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흡연이 원인의 75% 정도를 차지하는 폐암의 경우 낮은 사회계층의 사망률은 높은 사회계층의 2.3~8.1배에 이른다. 이런 불평등은 사회계층별 흡연율 격차 때문에 생긴다.

2003년 중졸 이하 저학력층의 흡연율은 대졸 이상 남자 고학력층에 비해 10~38%나 높았다. 이런 격차가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을 계기로 본격적인 금연정책이 시작됐다.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1994년 72.9%에서 2003년 56.7%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회계층간 흡연율의 격차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금연정책의 효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 제공은 주로 중산층 이상에서 더 잘 전파되고,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정책도 대형식당, 대형빌딩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낮은 사회계층은 이용 가능한 자원의 부족,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 높은 니코틴 중독성 등으로 인해 금연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건강수준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러 정책이 필요하지만, 흡연율 격차를 줄이는 일이 중요한 정책의 하나가 될 것이다.

먼저, 사회계층간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정책 등 보다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회계층간 흡연율 격차 해소가 국가 금연정책의 핵심 목표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기존의 금연정책 수립과정에서 형평성을 고려하게 될 것이고, 담배가격 인상, 금연클리닉을 통한 금연진료서비스 제공 등 흡연율 격차 해소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정책 들이 실제적인 불평등 감소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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