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15 20:29 수정 : 2006.01.17 08:27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① 동네따라 수명 다르다

어떻게 조사했나

우리가 사는 동네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까?

거주지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단지 우리가 사는 지역이란 의미를 넘어선다. 소득수준 등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하나의 ‘코드’가 됐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와 중랑구, 전남 진도군 등 세 지역을 뽑아 최근 사망자의 삶의 이력과 조건을 역추적했다. 이들 세 지역은 노인 인구 비율이 거의 비슷한 점이 감안됐다.

취재팀은 이들 지역의 2005년 사망자 가운데 각 지역 사망자 평균연령에 해당되는 사망자 10여명씩을 표본으로 삼아 지역별로 4~5명씩 그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사망원인, 흡연·음주 등의 건강행태, 의료자원의 접근성, 빈곤에의 노출 등을 중심으로 고인들의 생애를 되살려 살펴봤다. 이렇게 고인들의 삶을 역추적한 결과를 비교·분석해 최종적으로 각 지역의 대표성을 지닌 사망자 3명을 선정했다.


집에 운동기구·종합병원 10분거리
정기검진서 암 발견 직후 치료나서


지난해 3월 췌장암으로 숨진 김옥희(가명·69)씨는 서초구에서 20년 이상을 살았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마을’ 가운데 하나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살다가 2001년 서초동 삼풍아파트로 이사했다.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중학교를 마친 김씨는 전업주부였고, 남편은 검사 출신의 변호사다. 2003년 7월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김씨는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예순을 넘어서면서 디스크 수술을 두 차례 받은 것 외에는 특별한 지병은 없었다. 2~3년에 한 차례씩 강남성모병원에서 수십만원이 드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아왔다. 김씨가 암을 발견한 것도 건강검진 결과를 통해서였다.

김씨가 살던 서래마을에서는 종합병원인 강남성모병원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말년을 보낸 삼풍아파트에서도 걸어서 40분이면 병원에 닿을 수 있고, 자동차로 가면 10분이면 충분하다.

남편과 둘이 살던 60여평짜리 아파트에는 러닝머신을 비롯해 스트레칭 기구, 허리 운동을 위한 벨트 마사지기 등 운동기구들을 갖춰두고 운동을 해왔다. 김씨는 다니던 교회까지 20여분 거리를 매일 규칙적으로 걸어다녔다. 술·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김씨는 166㎝의 키에 몸무게 65㎏으로, 평소 68㎏을 유지해 왔다. 김씨는 어려서부터 수영을 곧잘 했고, 서래마을에 살 때는 근처 수영장에서 꾸준히 수영을 했다. 예순을 넘어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녀들이 출가하기 전에는 집에 가정부를 고용했기 때문에 집안일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김씨의 남편(72)은 그가 암 진단을 받고 숨지기까지 1년8개월 동안 매일 아내의 간병기를 썼다. 그는 현재 간병기를 책으로 내려고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남편이 “우리는 천생연분이었다”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은 금실 좋은 부부였다.

그의 간병기를 보면, 김씨는 암 진단을 받은 뒤 곧바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았다. 병원의 병실 사정에 따라 2인 병실과 7인 병실을 번갈아 이용했다. 남편을 비롯한 아들딸들이 돌아가면서 간호를 했고, 간호사 출신의 조카가 거의 매일 병실을 지켰다. 숨지기 열흘 전부터는 전문 간병인이 24시간 그를 간호했다. 그의 지인들 가운데 사위를 포함해 의학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의사가 적어도 5명은 있다.

김씨가 암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비로 7천만~8천만원이 들었다. 몸이 항암치료를 잘 견디도록 한 달분에 60만~130만원인 홍삼제품, 아가리쿠스버섯 등을 꾸준히 먹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가족들이 병원 식사 대신 죽이나 과일주스 등을 만들어서 챙겨줬다.



운동 안하고 담배로 스트레스 해소
감기로 알고 약먹다 폐암말기 판정

서울 중랑구에서 20년을 넘게 산 조길자(가명·62)씨는 지난해 5월 말 폐암으로 숨졌다. 2004년 9월 몸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동네에 있는 내과에서 감기 치료를 받았다. 감기가 잦은데다 나이가 들어 아픈 줄 알고 감기약만 먹으며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머리가 너무 심하게 아파 원자력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시티 촬영 결과 뇌에 종양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폐암 말기로 이미 암세포는 뇌로 전이돼 있었다. 조씨의 딸은 “평소 다니던 내과에서는 별거 아니라고 해서 노환으로만 생각했는데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하고 구토를 해서 종합병원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몸이 아플 때마다 3~4년에 한 차례씩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근년 들어서는 검진을 받지 않아서 암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젊을 때는 하루에 소주 2~3잔씩을 마셨고, 하루에 반 갑 정도 꾸준히 담배를 피웠다. 사실 그의 흡연 이력은 30대 후반부터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담배를 피워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서 시작했다. 그게 20년이 넘었다. 영세한 건축사업을 한 남편이 건축 공사를 시작할 때마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조씨의 몫이었다. 돈을 융통하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남편과 갈등도 잦게 됐고, 그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딸은 “흡연은 (엄마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말했다. 몸에 해롭다는 생각에 그도 몇 차례 금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 못 가서 다시 피우곤 했다.

게다가 조씨는 몸을 움직이기 싫어해서 주로 집에서 지냈다. 집을 나서면 걸어서 30분 거리에 아차산이 있고, 망우산도 가까이 있지만 등산을 해 본 적이 없다. 3년 전 가족들의 권유에 떠밀려 수영장을 6개월 정도 다녔을 뿐이다. 집에서 1.5㎞ 정도 거리에 종합병원, 가까운 거리에 대학병원이 있다. 조씨는 평소 한약을 자주 먹진 않았지만 콜라겐과 칼슘제 등을 먹었다.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원자력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 10만원씩 치료비를 썼다. 병실은 병원 사정에 따라 2인, 4인, 6인실을 번갈아 가면서 썼다. 낮시간은 간병인을 뒀고, 밤에는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간호를 했다.

초기 검사 비용 1천만원에 치료비 등을 모두 합하면 4천여만원이 들었다. 건축업을 해서 한 달에 200만원쯤 버는 조씨 남편 벌이로는 꽤 큰 부담이었다. 함경도가 고향인 조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했고 여느 주부들처럼 1남1녀를 키우며 집안일을 했다. 조씨는 숨지기 전 남편과 딸 부부, 손자와 함께 지은 지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20여년 ‘깡소주’…종합검진 경험 전무
갑자기 쓰러져 병원 옮기자마자 숨져

백만길(가명·65)씨는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서 평생을 살다 지난해 10월 숨졌다. 백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가족들과 이웃들은 “술 마시다가 죽었다”고 입을 모았다. 의학적으로 알코올 중독에 의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판정을 받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시다가 숨졌다고 믿고 있다.

백씨는 철들면서부터 술을 즐겼고, 20년넘게 거의 매일 소주 2병씩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 안주는 거의 먹지 않고 ‘깡소주’를 마셨다. 숨지기 1년 전부터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고 술에만 의존했다. 담배는 하루 한 갑에서 한 갑 반 정도를 피웠는데 많이 피우는 날에는 3~4갑씩을 피우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인 백씨는 젊은 시절 면소재지에서 식육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부인 이아무개(65)씨가 4평 남짓한 구멍가게를 운영해서 어렵사리 살고 있다.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인 이 가게에는 부엌까지 합해서 5평을 넘지 않는 살림집이 딸려 있다. 3남1녀는 모두 외지에 살고 백씨는 이 집에서 부인과 둘이 살았다.

가게에선 담배와 술, 과자, 간장 등을 팔고 있는데, 한 달 수입은 50만원을 넘지 않는다. 마을 주변에는 바닷가를 끼고 산책로가 있고 동산도 있지만, 백씨는 좀처럼 운동을 하지 않았다. 가끔 동네 사람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바닷가에 나가거나 동네 사람들과 둘러앉아 화투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집안에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부인 이씨는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며 “촌사람들은 일거리가 있으면 일하고 없을 때는 술이나 마시면서 보낸다”고 말했다.

180㎝의 큰 키에 몸무게가 75~80㎏이던 백씨는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해 목이 아파서 부분적으로 검진을 했다가 간과 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백씨는 술을 줄이지 않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지도 않았다.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으면서도 따로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백씨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보건지소와 면에 하나 있는 의원에 갈 수 있다. 인구 4천여명인 이 면의 보건지소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주민들이 고혈압이나 관절염, 감기 등으로 찾고 있다. 백씨의 집에서 4~5㎞ 떨어진 진도읍에 중소형 병원 2곳이 있다.

백씨는 지난 추석날 아침에 집에서 쓰러져 진도읍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곧바로 숨졌다. 이씨는 “남편은 밥 대신 술 힘으로 버텨왔다”고 말했지만, 백씨는 알코올 중독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반

특별취재팀; 이창곤(팀장), 박주희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 기자 gon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2006 연중기획 함께넘자, 양극화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