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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5 20:16 수정 : 2006.01.17 08:27

같은 서울에서도 인구 1만명당 의원 수가 강남구와 강북구가 두배 정도 차이가 나는 등 보건의료자원의 불균형이 지역별 건강불평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강남구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왼쪽)와 성북구의 삼양로 주변의 항공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3인 사례진단…
[2006 연중기획 함께 넘자, 양극화] 1부 건강불평등 사회 ① 동네따라 수명 다르다


저소득층 ‘웰빙’ 은 남 얘기… 부유층은 배려 속 임종

사회계층별로 사망 원인이 다르다. 췌장암은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가 크지 않은 질병인 데 반해, 폐암과 알코올 관련 사망은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서울 중랑구 조길자씨의 경우

중랑구 조길자씨의 사망 원인은 흡연으로 보인다. 폐암 원인의 80~90%가 흡연이고, 20년 넘은 조씨의 흡연력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담배를 피울 동안만이라도 조씨는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니코틴이 그러한 신경자극 효과를 제공했을 것이다.

조씨는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금연 캠페인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흡연 습관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담배를 끊을 절실한 동기가 없었을 수 있다. ‘오래 산다’는 가치는 정말로 낮은 사회계층과 높은 사회계층에게 동일한 가치를 갖는가?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의 가치는 높은 사회계층에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다. 만약 조씨가 생전에 로또에 당첨됐다고 상상해 보라. 그는 금연에 대한 매우 큰 동기가 생겼을 것이다. 조씨에게 이제 세상은 ‘힘겹게 버텨야 하는 곳’에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남 진도군 백만길씨의 경우

백만길씨의 의학적 사망 원인은 가족들의 말을 들으면 “명확하지 않다.” 불명확한 사망 원인은 대체로 낮은 사회계층에게 집중된다. 정확한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마도 가족들은 백만길씨의 건강에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매일 술을 마신 백씨는 의학적으로 간경화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간과 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간경화로 간정맥이 막혀 식도 쪽의 정맥이 부풀어 오르는 식도류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식도류가 터져 사망했을 수도 있고, 간성혼수로 숨졌을 수도 있다.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우리나라에서 낮은 사회계층에 집중된다. 애초 백씨가 우리나라에 흔한 B형 간염을 앓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만약 B형 간염도 갖고 있었다면, 매일 마시던 술과 함께 죽음을 더욱 재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간경화인지 간염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먹고살기에도 바쁜 가족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백씨의 건강이 아니라, 백씨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경제적으로 기여하느냐다.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이나 금연 클리닉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백씨는 왜 술과 담배로 살았을까? 백만길씨의 키는 180㎝로 아마도 어릴 적의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키는 어릴 적의 영양상태를 반영한다. 하지만 백씨의 청·장년기는 그리 좋은 삶이 아니었다. 백씨는 장사도 잘 되지 않는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으면서, 술과 담배를 친구 삼았다. 담배와 술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중독성은 일상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도록 만든다. 특히 백씨에게 술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는 도구였다.

세상사람들이 ‘웰빙’을 부르짖으며 와인을 찾고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할 때, 그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집안에 갇혀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웰빙은 낮은 사회계층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씨나 백씨에게 웰빙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해소해줄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이었을 것이다.

서울 서초구 김옥희씨의 경우

서초구의 김옥희씨는 인생의 마지막을 가족의 따뜻한 배려 속에 보냈다. 그들 가족에게는 사랑이 넘쳤고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인간적인 애절함과 진정한 슬픔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김씨의 삶의 가치는 그만큼 종말기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을 논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말 모든 사람들의 삶의 가치, 삶의 질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삶의 가치, 삶의 질은 부유한 계층의 것은 아닌가? 부유한 계층이 누리는 삶의 질을 시기하거나 그들의 삶의 질을 끌어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가능한 한 최대한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즉, 낮은 사회계층들도 그들의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세 분의 명복을 빈다.

강영호 울산대 의대 교수


1만명당 의사수 서울 강남 47명…부산 강서 2.8명

보건의료자원 지역 불평등

우리나라 시·군·구 사이에 의사·병상·의료기기 등 보건의료자원의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만명당 의원 수를 보면 서울 강남구는 28.26곳인데 강북구는 10.29곳에 그쳤다. 똑같은 서울 지역인데도 두 곳의 격차는 2.7배에 이르렀다. 지방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욱 크다. 서울 강남구와 충북 청원군(6.95)는 무려 4배의 차이를 나타냈다. 병상, 의사, 의료기기 등 보건의료 자원의 불균형은 지역별 건강불평등 나타내는 또 하나의 주요 지표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센터장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16일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2004년말 전국 234개 시·군·구별 보건의료자원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전국 시·군·구 가운데 의원 수가 가장 많은 구는 서울 강남구로 1492곳에 이르는데 반해 가장 적은 경북 울릉군은 단 7곳에 그쳤다. 거주 인구 수를 감안해 만명당 의원 수로 이를 다시 분석해봐도 서울 강남구의 경우 28.26곳으로 전국에서 최고였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병상 수와 의사 수 등에서도 다른 구를 압도했다. 병상 수에서도 4256곳으로 가장 많았고, 가장 적은 부산시 강서구의 7곳에 견줘 무려 608배에 이르렀다. 강서구가 인구 5만3천명(80%가 농민)에 그린벨트 지역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는 매우 극심하다. 서울 강남구와 부산시 강서구는 만명당 병상 수에서도 강남구 28.26, 부산 강서구 4.30을 보였고, 만명당 의사 수에서도 강남구가 28.26명에 이르는데 부산 강서구는 2.81명으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씨티(CT)와 엠아르아이(MRI) 등 의료기기 측면에서도 이런 지역별 차이는 뚜렷했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씨티 31개(만명당 0.59), 엠아르아이 23개(만명당 0.44)가 분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부산시 강서구는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취재팀

교육·소득차 원인…운동 인프라도 영향

지역적 차이 왜

강남구의 건강수준은 강북구보다 높다. 연령의 차이를 보정한 후에도 서울시의 건강수준은 다른 시·도보다 높다. 이러한 차이가 왜 발생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지역간 건강수준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남구에 사는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교육수준, 직업계층, 소득수준은 모두 건강수준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강남구의 건강수준은 높게 된다.

둘째, 지역 자체의 효과이다. 예컨대 인구당 담배 소매점수가 강남보다 강북지역에 많을 수 있다. 또한 강북보다 강남지역에 인구당 운동시설이 더 많을 수 있고, 이는 지역간 운동실천율의 차이로 귀결될 수 있다.

미국이나 서구 유럽처럼 사회계층에 따른 주거지 분리가 오랫동안 진행된 나라에서는 지역 자체의 효과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들을 보면, 아직 지역 자체의 효과보다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성적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자체의 특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별취재팀; 이창곤(팀장), 박주희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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