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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암· 이방실 지음/흐름출판(2107) “머리가 아픕니다.” 지난 연말 만난 에스케이(SK)그룹의 한 임원은 한숨을 쉬었다. 최태원 회장이 던진 화두인 ‘사회적 가치’가 알쏭달쏭하지만, 당장 실행안을 내놔야 하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수익을 내면서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여하는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도 벅찬데…” 하는 볼멘 목소리도 있다지만 회장이 “미래에 기업이 살 길은 여기에 있다”고 드라이브를 거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계열사마다 이익과 사회적 가치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에스케이의 이런 변화에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공기관들도 사회적 가치를 ‘열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효율성, 수익성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 환경,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측정해 반영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기관마다 어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할지 고민 중이다. 기업이 빈곤, 안전, 환경 등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다. 기업은 오로지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한다던 시절도 있었고, 이익을 많이 내 주주가치를 올리는 것이 지고의 목표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잘되면 세금 많이 내고 고용 늘려서 사회도 좋아진다’는 공식이 깨지면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는 압력이 높아졌다. 2000년대 이후 시에스아르(CSR, 사회책임경영)가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사회문제 해결을 기업의 본업과 연계하는 쪽으로 진화해갔다. 2011년 미국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자본주의를 치유해 성장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방법’이란 논문에서 제시한 시에스브이(CSV, 공유가치창조)도 그중 하나다. 특히 시에스브이는 기업의 자원과 지식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업의 장기적 경쟁우위 확보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어 단순한 기부에 만족하지 못하던 경영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 출간된 경영서 <빅 프라핏>은 시에스브이를 통해 새로운 사업의 영역을 찾아내고, 소비자, 시민단체, 정부의 지지와 협조를 끌어내며, 이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소개된 사례 중에는 ‘신발 한 켤레를 사면 개도국 맨발 어린이에게 한 켤레를 기증합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작해 2016년 7천만 켤레까지 판매량을 늘린 탐스슈즈도 있다. 저자는 “수익을 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성장전략이 향후 기업경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 일본의 경영컨설턴트인 후지이 다케시 같은 이는 한국과 중국에 덜미를 잡혀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일본 기업의 혁신 전략으로 시에스브이를 제안한다. “시에스브이는 글로벌 경쟁 환경 아래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말려들지 않고 스스로 시장을 창조하고 리드하기 위한 이노베이션(혁신)”이라는 것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이 한계에 부닥친 것은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사회적 목적의식과 사명을 경영에 잘 접목하는 기업인이 유능한 경영자인 시대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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