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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5 19:44 수정 : 2016.05.15 19:44

권혁웅 시인

노인이 주름진 몸속에 든 젊은이라면 아기는 조그만 몸속에 든 어른이다. 커가는 아기 앞에서 드는 생각이다. 이 아기는 애늙은이 아닐까? 아니면… 천재? 세상 어느 부모나 한번쯤 하는 생각을 우리 집에서도 했다. 아기에게 “고맙습니다”를 가르쳤더니 오른팔을 내밀고 고개를 외로 꼰다. 공주님 인사다. 한번은 아기가 걷다가 의자에 머리를 찧고는 울었다. 할머니가 “아니, 요 의자가 우리 아인이를!” 이러면서 손바닥으로 의자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울던 아기가 다가와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팡팡 쳤다. 너무 약하게 혼내줬다 이거다. 운전할 때 카시트에 앉히면 10분을 못 참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엄마의 안전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여기는 아인이 자리, 옆은 엄마 자리, 앞은 아빠 자리야. 그러니까 여기는….” 세 번쯤 반복하면 신기하게도 가짜 울음을 그친다. 알아들었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면 이미 외면하고 창밖을 보고 있다. 더 말해도 안 들어줄 거면서 잔소리만 심하군, 하는 표정이다. 성적이 신통치 않게 나오는 자식을 두고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공부만 했으면 엄마 아들이 아니라 엄마 친구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듯이. 아직 말을 못하는 아기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한다. 얘가 머리는 좋은데 아직 말할 생각이 없어서….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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