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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1 19:14 수정 : 2016.05.01 19:14

권혁웅 시인

<반지의 제왕>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주 멋진 장면이 있다.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한 젊은 기사가 나즈굴에서 온 적의 대장을 막아선다. 암흑의 대장은 차갑게 비웃는다. “날 막겠다고? 멍청한 놈. 살아 있는 어떤 사내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러자 젊은 기사가 대답한다. “난 사내가 아니다! 네 눈앞에 있는 이는 여자다. 난 에오문드의 딸 에오윈이다.” 물론 적은 그녀의 손에 쓰러진다. 이것은 멋진 말장난이다. 사내(man)라고 번역한 말은 실은 인간(man)이란 뜻이다. 암흑 대장은 어떤 인간도 자신을 쓰러뜨릴 수 없다고 선언했는데, 에오윈은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woman)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불멸을 부수어 버린다. 서구문명은 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오랜 세월을 고생했다.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나왔으니까 여자는 남자의 부록이거나 계륵이야.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도입된 게 1920년, 노예해방보다 50년이나 늦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야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었다. 그들의 자유, 평등, 박애 역시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요즘도 드물지 않게 이런 소리를 듣는다. “남자들 하는 일에 여자가 어딜 감히…” 그때마다 암흑 대장이 되어서 이렇게 내뱉고 싶다. “여자들 하는 일에 사내가 어딜 감히….”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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