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10 19:35
수정 : 2016.04.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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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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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천변에 벚꽃과 조팝꽃이 만개했다. 분홍을 섞은 흰색과 연두를 섞은 흰색이다. 솜사탕과 녹차아이스크림을 양손에 든 아이의 심정이 길에 부어졌구나.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빨간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가 놓였지. 무슨 일편단심도 아니면서. 왁자지껄한 사람들이 있고 긴 이야기와 가끔 터지는 웃음이 있고 봄밤이 있다. 서둘러 무너지고 싶다는 거겠지, 마음이 마음에 기대고 날씨에 기대고 그러다 휘청하면 몸에 기대기도 하겠지. 잠시 고개를 돌리면 벚꽃과 조팝꽃이 낯을 붉히고 떨어진다. 스팸메일도 아니면서. 외롭다고, 비가 오지 않아도 젖었다고,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렇게 연소자 관람 가에서 관람 불가로 봄밤이 깊어가기도 하겠지. 그러다 간혹 벤치에 누워 잠든 취객이 있으면 벚꽃은 가만히 내려와 이불처럼 덮이기도 하겠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우수수 쏟아지는 이불은 감기에 걸릴까봐 근심하는 나무의 마음이기도 하다. 다시 날이 밝으면 잠바 셋이 나란히 시끄럽다. 확성기 밑에서 빨간 잠바, 파란 잠바, 녹색 잠바를 입은 선거운동원 알바생들이 부지런히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신호등도 아니면서. 봄이 되어도 귀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물끄러미 그 장면을 쳐다본다. 2년 전 그 일이 없었다면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되었을 학생들이 저 안타까운 미래완료 시제의 끝에서 기약 없이 쳐다보고 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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