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05 19:30
수정 : 2016.04.05 19:30
|
권혁웅 시인
|
빌 브라이슨은 <발칙한 영어산책>에서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 장면을 소개한다. 그날의 주인공은 링컨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 평가받던 에드워드 에버렛이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이나 화려한 만연체 문장으로 엮인 연설을 이어나갔다. “문학적인 암시, 화려한 겉치레, 애매한 역사적 사실로 가득”하고, “연이은 종속절, 복잡한 구조, 옆길로 샌 보충설명”이 덧붙은 1500개나 되는 문장들이었다고 한다. 그가 연설을 마치자 어마어마한 박수가 쏟아졌다. 교장 선생님의 긴 훈시 끝에 따라붙는 환호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뒤를 이어 등장한 링컨은 비교적 짧고 분명한 뜻으로 된 10개의 문장으로 연설을 마쳤다. 끝나는 데 2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을 틈도 없었다고 한다.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문구는 이 연설의 마지막 문장에 들어 있다. 마침 선거철이라 명연설에 관심이 간다. 안타깝게도 멋진 단문은 없고 복잡하게 꼬인 문장들만 눈에 띈다. 다시 에버렛의 시대가 온 걸까? “종북 좌파와 친노 운동권을 척결하고 견고한 여당의 표를 잠식할 수 있는 확장성이 있는 국민의,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가 아니라 진실한 국민에 의한, 이따위로 대접하는 당에서는 일할 생각이 없으니 단체로 사죄를 구하러 오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오는 걸까?
권혁웅 시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