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3.20 22:37 수정 : 2016.03.20 22:37

권혁웅 시인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새 설사로 고생했다고 하신다. 병원에 모시고 가니 급성장염이란다. 진찰하고 링거 맞고 약 태워서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니 점심시간이다. “그럼 다녀올게.” 아내가 나갈 차례다. 오래전에 약속된 모임이다. 혼자서 이유식을 먹이고 났더니 아기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킨다. “나가자고, 오늘도 열 번은 더 문을 가리켰어.” 그저께 했던 장모님 말씀이 떠올랐다. 단지 앞 놀이터를 산책했다. “아기가 예쁘네요. 몇 개월 되었어요?” 다른 집 엄마와 말도 텄다. 돌아와서 바나나를 갈아 먹이고 두 시간쯤 놀았더니 다시 문을 가리킨다. 조금 전에 다녀왔잖니? 아빠도 좀 쉬자. 생각해보니 아침에 서둘러 나가느라 머리도 못 감았다. 간밤에 한잔했는데 속풀이는커녕 식사도 못 했다. 낮잠 잘 때 밥도 먹고 머리도 감아야지 했는데, 아기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서 아무것도 못 했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울면서 아빠를 찾는 아기를 두고는 화장실도 못 가는데, 밥은 무슨! 아, 주부의 일은 멀고도 험하구나. “엄마, 언제 오려나?” 혼잣말을 했더니 아기가 하던 놀이를 멈추고 현관 앞으로 기어가 하염없이 문을 바라본다. 흥, 그렇게 나가려고 하더니 다 엄마 보려고 한 거였구나. 아기가 돌아보고 옹알거리는데, 문득 현아의 노래가 들렸다. “이게 다 내가 잘나가서 그렇지 뭐.”

권혁웅 시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권혁웅의 오목렌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