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24 19:05
수정 : 2016.01.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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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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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감기에 된통 걸렸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겨울마다 콧물을 카이저수염처럼 달고 다니던 친구들이 많았다. 10개월 먹은 아기가 이 무슨 복고스타일이람. 머리까지 짧으니 누가 봐도 ‘그때를 아십니까’ 아역 출연자다. 기침할 때에도 천식 환자처럼 그렁그렁한 소리를 낸다. 방금 할머니 한 분이 내 옆을 기어가셨다. 막히면 넘친다. 결국 중이염까지 갔다. 콧물이 넘쳐 귀 쪽으로 흐른 것이다. “병원에서는 기계를 썼지만, 집에서는 이걸로 해야 해.” 아내가 내민 기계는 입으로 빠는 수동식 콧물 흡입기였다. “뻥코라고 해.” 변기 막혔을 때 붓는 세제가 ‘뚫어뻥’이다. 변기든 코든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었으면 좋겠다. “식염수를 분사해서 아기 코를 불려둔 다음, 입으로 흡, 하고 빨아들이는 거야. 핫핫.” 흡(吸)이라니, 의성어가 어찌 이리도 정확할까. 그러고 보니 아내의 저 헛헛한 웃음에도 뜻이 있는 것 같다. 감기를 영어로 콜드(cold)라고 하지. 감기에 걸린다는 건 차가움에 캐치당하는 거다. 아내의 웃음은 핫핫(hot hot). 차가움 하나에 뜨거움 둘로 대응하기다. 핫핫. 나도 따라 웃었다, 열 내는 하마처럼. 이렇게 웃다 보면 우리는 매우 ‘핫’할 테지. 그야말로 ‘소 핫’이야. 아기가 돌아보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왜 자꾸 쳐다보니 왜? 내가 그렇게 예쁘니?”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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