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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5 19:04 수정 : 2015.12.15 19:04

권혁웅 시인
사흘 동안 자는 아기만 보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둘이 있는 시간이 생겼다. 괄목상대라, 사흘 만에 아기가 달라졌다. 혼자서 소파나 거실장에 두 손을 척 올리더니 불끈하고 일어서는 거다. 아니,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녀석이 일어서기부터 한다고? 사흘 전만 해도 배를 깔고 힘겹게 버둥거리며 이동하곤 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던 아기가 까치발을 하고 일어나서는 소파 너머로 아빠를 보고 있었다. 허풍선이 남작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작은 늪에 빠지자 손으로 자기 머리를 들어 올려 늪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 허풍선이 아기도 땅과 밀착해 있는 운명, 수평선이 되는 운명을 제힘으로 거부하고 저렇게 수직선이 되었구나. 그러고 보니 아기에게도 모험담이 여럿 있었다. 마룻바닥을 기어 다닐 때는, 힘은 들어도 회전과 이동에는 거침이 없다. 구석구석을 어찌나 잘 찾아가는지 배에 부직포만 달아주면 영락없는 로봇청소기다. 삼분만 자신을 쳐다보지 않으면 소리를 빽 하고 지른다. 고함원숭이가 내는 소리 비슷하다. 아빠가 재채기를 하면 자지러지게 웃는데, 가짜로 재채기를 하면 헛웃음 비슷하게 웃는다. 얼마 전 첫눈이 왔을 때엔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회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눈을 본 주제에, 뮌히하우젠 남작보다 더 사연이 많은 눈빛이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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