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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3 18:47 수정 : 2015.12.13 18:47

권혁웅 시인
아기를 데리고 작은 송년모임에 갔다. 못 보던 어른들을 보자 아기는 쉴 새 없이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괜찮아, 아인아.” 정끝별 시인이 숙련된 조교의 자세로 아기를 안았다. 아기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입을 비죽거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선하게 웃는 나희덕 시인, 미남 이병률 시인과 미녀 김수이 평론가, 다정한 이희중 시인과 김미도 비평가, 인자함 그 자체인 마종기 선생님과 1호 배내옷을 선물해주신 사모님에 이르기까지, 그 친절하고 다정하고 잘생긴 얼굴들 앞에서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울음을 길게 뽑느라 얼굴을 열심히 일그러뜨리지만 잔주름 하나 없어서 토실토실한 울음이다. 짧은 두 팔을 배 위에 두고 역시나 짧은 두 다리는 어른 손에 안겨 보이지 않으니 영락없는 돌하르방이다. 돌하르방은 험상궂게 생겼는데 후대로 오면서 점점 웃는 얼굴로 변했다고 한다. 아기의 얼굴에도 무서움과 귀여움이 섞여 있었다. 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대신 자신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돌하르방은 마을 입구에서 잡귀를 쫓아내는 역할을 했다. 시인은 본래 말의 귀신을 부리는 자들이다. 저 멋진 시인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아기는 우는 얼굴로 가정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아기야, 이 아빠도 시인이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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