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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5 18:50 수정 : 2015.11.15 18:50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처음에는 극심한 가뭄이었다. 소방차가 도착했고 물대포가 직사(直射)로 풀을 덮쳤다. 사진 몇 장 찍고 나자 소방차는 이내 떠났다. 또다시 풀이 눕는다. 비가 내리고 추운 날이었다. 물대포가 시위대를 덮쳤다. 5공 때는 최루탄, 엠비 때는 물대포였는데 이번에는 최루액 섞은 물대포였다. 직사로 한 농민을 가격했다. 곧 칠순을 맞는 노인이었다. 28년 전에는 한 젊은이를 직격하더니, 이제는 노인을 직격했다. 쓰러져 의식을 잃은 몸 위에도, 그이를 부축하러 간 두 사람에게도 물대포가 쏟아졌다. 그이를 실은 앰뷸런스 안에까지 물대포가 따라왔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캡사이신을 뿌리고 차벽에 식용유를 바르고 몰카를 찍는 자들의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고소 고발장을 남발할 손길 아래 눕는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난무했다고 쓰는 사이비 언론사들의 눈 아래서, “논술 보는 학생들 교통 묶여 발 동동” 따위 작명이나 궁리해내는 기자들의 눈 아래서, 풀이 눕는다. 아침에는 파리의 참상이 전해지더니 저녁에는 서울의 참상이 전해지지 않는다. 위헌 판정받은 차벽에 막혀서, 도로교통법 위반에 묶여서, 불법 채증에 걸려서 전해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파리 테러만 위로하고는, 바람처럼 외국으로 날아갔다. 이제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을 차례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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