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18 18:32
수정 : 2015.08.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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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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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울프슨이라는 미국인은 자신의 모국어를 참아낼 수 없었다. 이 분열증 환자는 자신의 안팎에서 들리는 영어를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어가 들릴 때마다 귀를 틀어막고, 영어 단어나 음소를 다른 언어로 대체하고,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번역했다. 초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영어를 회피하지 못했다. 영어 단어나 문장, 소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을 주의 깊게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머릿속의 영어까지 추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모국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다. 모국어의 어휘와 문법에 따라서 생각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환자의 비극을 읽으며 친일파 생각이 많이 났다. 2015년 현재,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의 목소리로 “천황폐하”니 “일본 수상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듣는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했고, 권력을 획득한 친일파가 아예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아베의 말은 듣지 않거나 듣더라도 비판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내부에서 울리는 저 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와 완전히 단절하려면 다른 나라에 가서 오래도록 살면 된다. 저 끔찍한 발언에서 벗어나려면 친일파를 끊어내야 한다. 추방 아니면 이민이다. 울프슨이 외국에 오래 살았다면 혀 짧은 소리로 영어를 쓰던 악몽에 관해 말했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 심정을 얹어 말할 수도 있겠다. “나, 무떠운 꿍 꼬또. 영어만 말하는(친일파가 득세하던) 세상 꿍 꼬또.”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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