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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02 18:44 수정 : 2015.08.02 18:44

권혁웅 시인
시를 읽고 쓰고 가르치는 게 직업이다 보니, 상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시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왕왕 묻게 된다. 아이들의 대답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자기 힘으로 맞설 수 없는 세상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가 글을 쓰면서 그 세상을 객관화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철이 들기 전에 겪어야 하는 폭력은 대개 가족의 붕괴라는 형태로 온다. 무서운 것은 그 폭력이 여전히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된다는 것이다. 아빠가 낮에 때리고 오빠가 밤에 몸을 더듬었다면 이미 정상적인 가족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나 오빠가 너를 사랑해서, 다 네가 잘되길 바라서 그런 거라고 한다면? ‘~니까’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를 깨닫는 데 사춘기 전부가 소모되어 버린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의 이름으로 가족의 의무를 착취의 메커니즘으로 바꾸어 버린다. 한 나라가 가족의 이름으로 운영될 때, 이를테면 지도자가 ‘국부’(國父)나 ‘어버이 수령’을 자처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상담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가출(家出)과 출가(出家)에 관해서 말해준다. 둘은 글자 순서만 다를 뿐 한자까지 똑같은 말이라고. 너는 집을 나와서 문학의 집에 들지 않았냐고. 불가에서든 가톨릭에서든 혹은 문학에서든 한 부문에서 일가를 이루면 이미 예전의 조그만 집에서는 벗어나게 된다고. 4·19도 그런 출가의 한 형식이었다고.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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