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21 18:53
수정 : 2015.06.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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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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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는 데 익숙하다. 야행성 체질이라 다른 이와 식사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다. 그럴 때면 간혹 이 시가 생각난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이성복, ‘서시’ 1연) 간이식당은 스위트홈이 아니란 얘기고, 늦고 헐한 것은 저녁만이 아닐 것이고, 낯설거나 미끄러운 것은 내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외롭고 저녁은 헐겁고 돌아갈 곳은 없는데, 이게 다 그대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다. 사랑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거라는 걸, 내 정처 없음은 그대 눈에 ‘픽업’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이 시는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대가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내 방황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인은 대답한다. 문득. 예측도 예언도 없이, 필연도 원인도 아닌 채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웅변하듯 사랑은 그런 ‘문득’의 정치다. 예고 없이 닥치는 축복이다. 지난 6월14일 서울대병원 격리병동을 방문한 대통령의 사진은 많은 뒷말을 낳았다. A4용지로 출력해서 써 붙인 ‘살려야 한다’는 문구에서 모니터의 각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설정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프레임 구석구석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노고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부기해둘 말은 있다. 거기에는 ‘문득’이 없었다. 모든 게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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