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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7 18:55 수정 : 2015.06.07 18:55


권혁웅 시인
좀비는 뱀파이어와 함께 인기 높은 공포영화 소재다. 희생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는 서사의 문법 때문일 것이다. 뱀파이어가 은밀하고 개인적인 반면(이들은 어둠 속에서만 나타난다), 좀비는 노골적이고 대규모다(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전자가 욕망을 암시한다면 후자는 죽음을 명시한다. 뱀파이어에겐 섹스어필이라도 있지만 좀비는 그냥 시체일 뿐이다. 좀비는 나를 물어뜯으러 달려드는 죽음이다, 그것도 떼거리로. 좀비영화가 흔히 종말론을 토대로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종말론의 문법은 이렇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유입, 부주의한 슈퍼감염자, 방역당국의 무능한 대처, 병의 확산 대신 소문을 막는 권력자들, 음모론, 3차 감염 이후의 대확산, 그로 인한 무정부 상태. 그다음에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메르스 사태에서 이런 서사를 읽은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점도 있다. 좀비 서사에서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무정부 상태가 도래했지만, 이번 경우에는 정부 기능의 마비로 인해 바이러스가 확산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세월호 때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마, 꼼짝 말고 있어”라는 문장 뒤에 “내가 얼른 구해줄게”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믿었다. 배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이번에도 비슷하지만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평범한 인물들이 나섰다. 가만있지 않고 감염지도를 작성하고 병원 이름을 공개했다. 이들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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