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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24 18:37 수정 : 2015.05.24 18:37


권혁웅 시인
아침에 아내가 물었다.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어. 어느 것부터 들을래?” 우리가 흔히 듣는 제안이다. 이럴 때는 대개 나쁜 소식을 먼저 고른다. 좋은 얘기를 먼저 고르면 나쁜 얘기가 앞의 기쁨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순서를 뒤바꾼다고 해서 행과 불행의 총합이 달라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농담은 흔히 이런 역설을 품고 있다. “환자분께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어느 것부터 들으시겠어요?” “나쁜 소식이요.” “불치병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한 달 남았어요.” “헉, 그럼, 좋은 소식은요?” “옆방 간호사 보셨죠? 완전 섹시하지 않습니까? 어제 그녀랑 데이트했어요.” 행과 불행이 당신과 나를 갈라놓고 있다는 선언이다. 흔히 말하는 ‘갑질’이란 이런 무서운 역설의 인증샷이다. 나도 조마조마하며 대답했다. “나쁜 소식부터 듣겠어.” “프로젝트 떨어졌어.” 아내가 공들여 준비해온 연구제안서가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상심이 컸겠다. “좋은 소식은 뭐야?” 아내가 나를 생후 45일 된 딸에게 데려갔다. “면봉 끝에 하얀 얼룩 보이지? 아인이 왕코딱지야.” 방이 건조해서 딸(이름이 아인이다)의 코가 자주 막히곤 했더랬다. “새벽부터 면봉에 물을 묻혀 콧속에 살살 흘려 넣었거든.” 그랬더니 말랑말랑해진 왕코딱지가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한쪽에 하나씩, 두 개나.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좋은 소식 둘이 나쁜 소식 하나를 덮었다. 프로젝트 얘기는 까맣게 잊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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