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5 18:27
수정 : 2019.07.05 19:50
황진미의 TV톡톡
<굿피플>(채널에이)은 일반인이 출연하는 관찰예능 프로그램이다. <하트 시그널> 시리즈를 만들었던 제작진이 연애에서 취업으로 주제를 옮겼다. 실제 로펌에서 8명의 인턴을 뽑아 한 달간 실무능력을 평가하여 2명을 채용한다는 설정이다. 매회 과제를 수행하는 인턴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지고, 로펌 변호사들이 뽑은 1·2위가 발표된다. 스튜디오에는 연예인과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응원단’이 있다. 이들이 매회 1·2위를 예측하여, 적중도가 높을 경우 한 명이 더 채용된다. 현재 응원단의 선전으로 3명 채용이 확정되었고, 최종면접만 남았다. 2명의 합격자가 예측되는 가운데, 누가 3등의 행운을 거머쥘지 미지수다.
<하트 시그널>은 매력적인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드라마적인 몰입과 토크의 잔재미를 안기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였다. <하트 시그널>이 나오기 전 일반인이 이름, 나이, 직업, 학교, 에스엔에스 등을 모두 공개한 채 관찰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한 예는 없었다. 출연자들의 외모, 스펙, 매너는 환상적이었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신상과 감정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방송을 통해 얻은 유명세를 자신의 경력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하트 시그널>은 자기개발과 에스엔에스를 통한 자기홍보가 일상이 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개인방송의 발달로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에 일반인을 캐릭터로 활용한 실험적인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섬세한 카메라 워크와 ‘촉이 좋은’ 패널들의 토크를 곁들여, 픽션과 논픽션, 드라마와 예능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하지만 <하트 시그널>에는 단점이 있다. 바로 취지와 정당성이 결여된 점이다. 엿보기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토크가 적극 활용되었지만, ‘남의 연애 엿보기’란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토록 매력적인 출연자들이 연애를 못할 리도 없으니, 응원과 훈수가 머쓱하다.
<굿피플>은 <하트 시그널>의 유일한 단점을 근본적으로 털어버린다. 취업이 간절한 청년들에게 도전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인재를 등용한다니, 이보다 공익적일 수 없다. 여기에 <하트 시그널>의 만듦새를 더 보강했다. ‘응원단’의 전문성을 높이고, 채용인원을 늘리는 미션을 부여하여 토크에 힘을 실었다. 인턴들 각자의 개성이 재미의 원천임을 알고, 모두를 주인공으로 삼는 편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각 인턴에게 배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찍은 다양한 앵글의 화면을 물 흐르듯 편집하여,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카메라는 이들이 로펌에서 일하는 모습뿐 아니라, 혼자 퇴근하거나 잠자리에 드는 모습도 짧게 비춘다. 여기에 일기 형식의 내레이션도 곁들인다. 이는 인물의 내면풍경을 담는 드라마적 작법이다. 과제수행과 평가에 연출이 거의 개입되지 않지만, <미생> <굿 와이프> <슈츠> 등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긴장과 몰입이 일어나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카메라 워크와 편집 덕분이다.
<굿피플>은 뛰어난 형식 뿐 아니라, 유익한 내용과 올바른 영향력을 갖는다. 로펌 변호사를 뽑는 과정이다 보니, 과제마다 실제사건과 문제해결 과정이 등장한다. 변호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생생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법리 전개과정에서 지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 면접에서 실제로 어떤 질문이 오가는지 보여주고, 어떤 대답이 적합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인턴들이 조별과제를 수행하고 발표하는 모습은 ‘팀플의 정석’이자 ‘발표의 정석’으로 참고할만하다.
<굿피플>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모범적인 인턴십 과정이다. 인턴십 과정은 본래 수습을 통해 실무를 익힌다는 교육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 없이 사회초년생들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며 열정을 착취하는데 악용되기도 한다. <굿피플>은 잘 짜인 프로그램을 통해 적절한 훈련과 실력위주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멋진 광경을 보여준다. 특히 통찰이 담긴 조언으로 인턴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멘토 변호사의 역할이나, 인턴들 간의 경쟁과 협업으로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 단기간에 상향평준화가 일어나는 교육적 성과는 눈이 부시다.
사법시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법시험을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로스쿨 도입의 취지를 깊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 양성과정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굿피플>은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지닌 인턴들이 법률적 상황에서 자신만의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처음에는 모두 ‘금수저’로 보였던 이들의 속내를 들려주며, 로스쿨의 비싼 학비가 여전히 문제임을 환기시킨다. <굿피플>은 체계적인 교육 및 평가 프로그램을 통한 선발이 일회적인 시험에 의한 선발보다 우수한 방법임을 설득해낸다. 이런 채용방법을 각 분야에 확산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굿피플>은 해묵은 사법시험 부활 논쟁을 불식시키고, 어떤 법률드라마 보다 흥미진진하게 법과 현실을 일깨운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응원하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특히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턴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다른 직업세계를 보여주는 시즌제로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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