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10.21 13:34 수정 : 2016.11.21 14:54

<공항 가는 길>(한국방송2)은 불륜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든다는 총평을 낳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결혼한 남녀의 사랑을 그릴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시청자들의 죄의식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드라마는 몇 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첫째, 섬세한 심리 묘사나 감정의 완급 조절이 뛰어난 연출을 구사한다. 특히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접근이 특별하다. 조기유학에 승무원과 기장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공항, 비행기, 호텔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 결과 어느 곳이든 비슷하게 느껴져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느낌을 자아낸다. “쿠알라룸푸르 강변이 한강처럼 보인다”는 말은 이런 분위기를 잘 대변한다. 특히 최수아(김하늘) 가족은 가양동 집, 시댁, 말레이시아, 시드니 등을 오가며 안착되지 않고 붕 떠 있는 느낌을 준다. ‘글로벌 유랑가족’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시간도 24시간 체제로 돌아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다. 이토록 부산한 움직임 속의 최수아에게 안착된 느낌을 갖게 하는 인물이 서도우(이상윤)이다. 그의 고택과 남산 사무실은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며,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풍경을 그가 담는다. 건축가라는 직업과 전통문화 장인인 모친은 그가 더욱 뿌리박은 인물로 보이게 한다.

둘째, 각자 배우자들의 문제점을 묘사하여 이들 가정이 원래 문제가 많았음을 강조한다. 최수아가 ‘박 기장님’이라 부르는 남편은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승무원과 조종사, 간호사와 의사, 방송작가와 피디 등 젠더적인 성격을 띤 직종 간의 결합에서 자주 목격되는 바이다. 그는 최수아의 절친과 동거했던 사이이고, 젊은 여승무원들에게 남근성을 과시하며 은근한 자부심을 느낀다. “얼굴이 안되면 공부를 해라”는 그의 말이 보여주듯, 딸을 국제학교에 보내려는 욕망은 사회적인 성공을 중시하는 그의 남근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도우의 아내는 더 문제적이다. 그는 가련한 미혼모임을 가장했지만, 실은 딸 애니를 버린 비정한 엄마다. 서도우와의 결혼도 인간문화재인 시어머니의 문화자본을 승계받으려는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시어머니의 뜻과 달리 자본과 결탁된 문화사업을 벌이려 한다. 드라마는 미혼모인 것이 오히려 결혼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등 앞선 젠더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심리스릴러적인 기법까지 동원하여, 모성을 부인하고 강한 출세욕을 지니며 거짓말을 해대는 뱀 같은 악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라는 유의미한 명제가 그의 입을 통해 나옴으로써 사이코패스의 궤변처럼 들리게 한다. 그의 사악함에 대비되는 인물이 의붓딸을 친딸처럼 사랑한 서도우와, 짧은 스침에도 애니의 죽음을 애달파한 최수아다. 드라마는 뚜렷한 선악 구도로, 선한 사람들끼리의 결합을 위로와 치유의 이름으로 수긍하게 만든다.

셋째, 둘의 관계에 운명적 필연성을 부여한다. 애니와 서도우의 모친은 죽기 직전 우연히 최수아를 만나 무언가를 전해준다. 서도우의 모친은 세속 사람 같지 않은 아우라를 지닌다. 그의 초월적 순수함은 정 많은 아들에게 대물림되었고, 최수아의 선함을 알아보게 한다. 요컨대 드라마는 세련된 표면과 달리, 대단히 근본주의적인 세계관을 갖는다. 뚜렷한 선악 대비, 우연한 만남, 직관에 의한 알아봄, 죽음을 통한 계시 등은 신소설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지만 무람없이 쓰인다.

이처럼 무리수를 쓰는 것은 드라마가 주장하고픈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마초적이고 권위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성취 위주의 교육열을 지닌 최수아의 남편과, 모성이 없고 세속적인 출세욕에 차 있으며 거짓으로 점철된 서도우의 아내는 나쁘다. 이들은 착한 배우자와 자식을 지닐 자격이 없다. 반면 남의 자식도 품을 수 있을 만큼 다정한 서도우와 무던하게 남편을 믿고 따르며 욕망을 절제할 줄 알고 양보심이 많은 최수아는 새로운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다. 둘의 결합은 애니와 서도우 모친이 죽음을 통해 보증한바 운명적 정당성을 지닌다. 고로 이들의 결합은 무죄!’

아마도 드라마는 해피엔딩일 것이다. 딸과 함께 제주도로 온 최수아와 모친의 기념관을 짓기 위해 제주도에 온 서도우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릴 것이다. 최수아는 국내선을 주로 취항하는 항공사에 재취업해 소박한 독립을 이룰 것이다. 딸은 국제학교가 아닌 공립학교를 다니며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닌 마음껏 축구를 하는 행복한 아이가 될 것이다. 이는 경쟁적인 교육환경과 출세지향적 삶에 염증을 느끼고 제주도로 떠난 중산층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결말이다. ‘헬조선에서 그나마 청정하고 평화로운 소도로 남은 제주로 망명을 떠나, 우리의 선함을 지키자’고 외치는 세련된 중산층들의 정서가 이 드라마를 떠받치는 힘이다. 지지하기도 비판하기도 애매한, 절충의 해법이 아닐 수 없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황진미의 TV 톡톡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