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06 20:37
수정 : 2015.10.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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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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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김영만의 종이접기 열풍이 거세다. 지난달 12일 <마이리틀텔레비전>(문화방송) 인터넷 생방송에 김영만의 첫 출연으로 지펴진 불씨는 18일과 25일 지상파 방송을 거치며 증폭되었다. 첫 녹화에서 그동안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백종원을 이긴 김영만은 지난 1일 방송분에서도 1등을 이어갔다. 등수가 문제가 아니다. 김영만은 물론 작가와 시청자가 모두 눈물을 훔친다. 아니 왜? 추억의 힘이라고 갈무리하기엔 너무 처연하지 않은가.
1988년부터 20년간 티브이 유아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를 가르쳤던 김영만을 다시 티브이로 불러낸 건 시청자들이다. 지난 5월 시청자 게시판에 ‘백종원의 대항마’로 ‘종이접기 아저씨’를 추천한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티브이 앞에서 종이를 따라 접던 어린이들이 지금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성인이 되었다. “그때는 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잘 할 수 있어요”라는 한마디에 이들이 눈물을 쏟는다. “여자 친구 접어주세요”라는 농담이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백수로 자라서 미안해요”라는 댓글이 올라온다. 김영만은 “이런 사회를 만든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며 고개 숙여 사죄하였다. 이들은 “아저씨가 사과하지 마세요”라며 함께 울었다.
한동안 멘토 열풍이 불었지만, 20~30대들은 아직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김영만은 멘토도 스승도 아닌 ‘아저씨’로 불린다. 그들은 ‘아저씨’에게 응석을 부리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늘어놓는다.
이들은 80년대 이후 급격한 출산율 저하로 형제자매가 거의 없이 태어나, 사교육이 전면화된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며 좋은 대학 가는 것을 목표로 자랐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삶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공포를 내면화하였다.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시키는 대로 대학을 나왔지만, 비정규직이나 백수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김영만의 외제차 구설은 세대론적인 속성을 지닌다. 윗세대는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종이접기를 해서도 외제차를 타는데, 나는 취향도 없이 스펙에 매달렸지만 취직이 안 된다는 박탈감이 작용한 것이다.
흔히 ‘삼포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진 게 없다.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현실에 대한 발언력도 없으며, 동세대를 결속시키는 공통의 기억도 없다. 공동체의 경험이 없기에 사회적인 해법을 강구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다. 보통 어떤 세대가 동세대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대중문화를 활용할 때, 자기 세대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즐겼던 문화를 재료로 삼는다. 정신적 이유기인 사춘기 때 전 세대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향유했다고 생각하기에, 그 시절 대중문화에 애착과 자부심을 보인다. 가령 <친구>와 <써니>가 각각 80년대 초반과 후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들을 불러들이고,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4>가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보낸 세대를 불러들인다.
그러나 지금의 20~30대는 자신이 유아기 때 따라하던 종이접기를 보며 회한에 젖는다. 이것은 복고가 아니다. 스스로 독립된 성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고, 정신적인 이유기를 거쳤다고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종이접기는 사교육의 경쟁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아무 근심 없이 따라하며 성취감을 느꼈던 마지막 놀이였다. “잘 자라주었구나”라며 위로를 건네는 아저씨의 말에 따라 이들은 내면의 어린 자아에게 손 내민다. 그러나 어디선가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켄터키 옛집~”이란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어린 검둥이’의 마지막 휴식을 회고하는 듯한 서글픔은 자꾸만 눈물을 훔치게 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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