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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5 19:39 수정 : 2015.10.23 14:22

백종원. <티브이엔> 제공

황진미의 TV 톡톡 ‘그림의 떡’을 넘어 ‘생존 요리’로

<집밥 백선생>은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에서 방송되는 요리프로그램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요리프로그램은 1970년대에도 있었다. 중산층 주부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요리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때라 “쇠고기를 넣었는데, 맛이 없을 리 있나?”라는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요리프로그램이 대중에 안착된 건 1981년에 시작된 <오늘의 요리>부터다. 컬러티브이의 보급과 아침방송의 시작이라는 매체상의 변화도 요인이었지만, 도시노동계층의 소득 향상으로 요리법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덕이었다. 1990년대에는 요리프로그램 출연자로 남성이나 어린이가 등장하는 등 형식이 다양해졌다. 2000년대에는 맛집 프로그램이 범람했다. ‘웰빙’ 열풍의 영향도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쏟아져 나온 퇴직자들을 흡수한 외식산업의 폭증과 관련이 깊다. 과당경쟁을 벌이던 외식업체들이 맛집 프로그램을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셈이다.

2010년대 들어 티브이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으로 넘쳐났다.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요리법을 선보이거나,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거나, 야외나 극한의 환경에서 밥을 해 먹는 과정이 전파를 탔다. ‘먹방을 넘어 쿡방으로’ 이어져 오는 최근의 경향에서 주목할 것은 남성이 주체라는 점과, 일상적인 요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가장 응집한 프로그램이 <집밥 백선생>이다. 요리를 거의 해본 적 없는 4명의 남자에게 중년남성 백종원이 요리를 가르친다. 메뉴도 된장찌개, 카레라이스 등 생활밀착형이다. 신선한 기획으로 각광받던 <냉장고를 부탁해>(제이티비시)만 해도, 실제 냉장고 안의 재료들만 이용해서 15분 안에 요리한다는 제한에도 불구하고, 요리사들의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집밥 백선생>은 ‘그림의 떡’ ‘대리만족’ 혹은 ‘상대적 빈곤감’ 등 기존 요리프로그램이 지닌 한계를 넘어, 실제 삶을 바꾸는 데 보탬을 준다. 첫 회에 김구라, 윤상, 박정철, 손호준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요리를 해보는 것으로 출발하여, 매회 메뉴만 정해주고 자기 식대로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다름없는 ‘요리불능남’들의 시행착오를 보며 몰입한다. 이들의 요리가 끝나면 백종원은 잘못된 점을 알려주며, 기초부터 응용까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알짜 비법을 전수한다. ‘만능 간장’ ‘만능 된장’에 눈뜨며, 출연자와 시청자들은 ‘요리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간다.

얼마 전까지 백종원은 종합편성채널의 토크쇼에서 회자되던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여배우와 결혼한 갑부 외식사업가이자 사학재단 이사장이자 요리연구가란 타이틀은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방송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수더분한 외모에 충청도 말씨, 믹스커피를 선호하는 서민적인 취향의 ‘백주부’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도 없이 혼자 터득한 요리법을 알려주는 아저씨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에서 싼 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해 보이는 그의 1인 방송은 아이돌 스타들의 ‘쌩쇼’도 가볍게 제쳤다. ‘1인 가구’ 시대에 시청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콘텐츠가 바로 요리임을 입증한 것이다. 돼지기름과 설탕을 듬뿍 쓰는 그의 요리는 ‘웰빙’이나 ‘건강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혼자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의 요리법은 최소한의 건강과 생존을 담보하는 기술이다. ‘세계 웰빙지수’에서 지난해 한국은 145개국 중 117위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42단계 추락한 결과다. 근 십년 만에 삶의 목표가 ‘웰빙’이 아닌 ‘생존’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서민들의 평균적인 삶이 ‘슈가보이’ ‘백주부’의 치솟는 인기에 반영되어 있는 건 아닐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관련영상] 슈가보이·백주부·백선생…진격의 백종원 / 잉여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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