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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30 19:19 수정 : 2015.10.23 14:30

황진미의 TV 톡톡

<냄새를 보는 소녀>(에스비에스)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신세경, 박유천, 남궁민의 호연은 물론, 이질적인 장르를 버무리는 솜씨가 능숙하다. 드라마는 ‘냄새를 본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연쇄살인마를 쫓는 스릴러이자, 상반된 성격의 남녀가 협력해가며 이끌리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여기에 만담을 활용하여 코믹의 요소를 높였다. 요컨대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코미디가 공존하며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드문 예이다.

드라마는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른 사건들을 배치하면서, 다른 사건들이 연쇄살인 사건의 복선과 단서를 제공하는 식으로 구성된다. 또한 판타지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냄새를 본다’는 설정은 판타지이지만, 이를 전제로 이성적인 추리를 해나간다. 때문에 판타지라는 비이성적인 요소가 수사극이라는 이성적인 장르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드라마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감각’이다. ‘냄새를 본다’는 것은 공연한 말장난이 아니라, ‘뛰어난 후각적 분별력’을 은유한다. 인간은 시각적 분별력이 발달되어 있으며, 후각은 시각처럼 명료하게 분별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에게 후각적 분별력이 뛰어난 존재의 감각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인다’는 말로 번역해 설명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오초림(신세경)이 비닐이나 유리로 차단된 냄새도 인지하는 등 정말로 냄새를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는 냄새를 시각정보처럼 명확히 분별할 수 있다는 설정을 밀고나가면서 파생된 현상이다. 오초림의 맞은편에 최무각(박유천)이 존재한다. 그는 여동생이 살해된 뒤 감각을 잃는다. 냄새도 맛도 모르고, 뜨거운 것도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한다. 통각상실증을 멜로에 차용했던 영화 <통증>이 있었지만 <냄새를 보는 소녀>의 활용이 훨씬 자연스럽다. 통각상실증을 신파로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변이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감각에 대한 색다른 사고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에스비에스)
연쇄살인범이 셰프(요리사)라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권재희(남궁민)는 세련된 매너를 지닌 채, 가장 고급화된 취향과 감각을 구사하는 인물이다. 그는 해마다 지역과 연령, 직업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납치한다. 그 사람이 감금당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게 만든 뒤, 살해하고 시신에 바코드를 새겨 버린다. 그는 희생자들의 기록을 바코드가 새겨진 한권의 책으로 소장한다. 그가 안면인식 장애임을 말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익명의 사람들로 인식하는 그에게 사람은 바코드로 구분되어야 할 책과 같다. 사람을 책으로 인식하는 것은 권재희만의 사고가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니며, 그를 통해 특별한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사람 도서관’의 개념이다. 권재희는 이를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전유하는데, ‘사람-책’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람하고 공유하는 게 아니라, 죽여 박제화시킨 뒤 사유하고 독점한다. 이는 사람을 노동력 뿐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사물화하고 사유화하려는 자본주의적 사고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엄마의 레시피(조리법)로 끓인 성게미역국을 먹으며, 오초림은 잃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통한 기억의 상기와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감각은 기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몸은 정신과 더불어 자아를 구성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감각의 변환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우리가 동일한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각의 차이에 의해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산다는 것. 오감을 일깨우는 신선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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