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9 19:40
수정 : 2015.04.27 18:19
황진미의 TV 톡톡
<빛나거나 미치거나>(문화방송)는 현고운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사극이다. 제목은 고려의 4대 왕 광종을 가리킨다. 즉위 후 호족과 왕족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광종의 ‘광’이 ‘빛날 광’(光)인지 ‘미칠 광’(狂)인지 묻는 것이다.
드라마는 왕건이 죽기 전 호족들의 발호를 근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왕건은 후삼국의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호족들을 연합해 고려를 건국했다. 호족과의 연합을 굳건히 하기 위한 혼맥으로 왕건은 29명의 부인과 34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왕건이 죽고 난 뒤 이 연합이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개국공신인 호족들이 왕위를 좌지우지 할 게 뻔했다. 왕건은 발호하는 호족들을 치기 위해 비밀친위대를 두고, 궁에서 쫓겨나 야인처럼 살고 있던 아들 왕소(장혁)에게 비밀친위대의 지휘를 맡긴다. 왕소가 바로 왕건 사후 6년 만에, 혜종과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는 광종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궁에 피바람을 몰고 올 운명을 타고난 왕소가 그 저주를 중화시킬 운명을 타고난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자, 궁중암투와 액션이 가미된 사극이다. 발해의 마지막 공주로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할 운명이란 이유로 강물에 던져진 신율(오연서)은 무역상단의 주인으로 자라난다. 신율이 거짓결혼식 신랑으로 우연히 만난 왕소를 낙점하면서 둘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드라마는 먼저 결혼하고 서로의 매력을 발견해가는 로맨틱 코미디란 점에서 장혁의 전작 <운명처럼 널 사랑해>(문화방송·2014년)를 연상시키고, 장혁의 심드렁한 매력과 거친 액션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노>(한국방송2·2010년)를 떠올리게 한다. 또 고려 광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2002년 사극 <제국의 아침>을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왕건이 죽은 뒤 혜종에서 정종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왕규의 난’을 생략하는 등 역사적 사건을 충실히 담는 대신 왕소와 남장여자와의 로맨스에 긴 시간을 할애한다. 또한 진지한 궁중사극과 로맨틱 코미디를 뒤섞는 편집이 매끄럽지 못한 단점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고려 초의 모습은 조선시대 사극에 익숙해있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던진다.
일단 황제와 황자라는 호칭은 당시 고려가 조선과 같은 제후국이 아니었음을 환기시킨다. 당시 고려는 독자 연호를 쓰는 황제국이었다. 또한 이복 남매간인 왕소와 황보여원이 결혼하는 근친혼이 가능했으며, 외가 성을 따르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도 유교사회인 조선과 다른 점이다. 호족들의 권세가 관료제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했으며, 이들과의 싸움 역시 정치나 법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도 다르다.
광종은 호족은 물론 왕족들까지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한다. 그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노비안검법을 실시했다. 노비의 신분을 조사하여 원래 양인이었지만 통일전쟁과 호족들의 강압에 의해 노비가 된 이들을 해방시키는 정책이었다. 노비해방으로 호족들의 경제력이 약화되자 광종은 과거제도를 실시한다. 세습신분이 아닌 실력에 의해 관리로 등용되는 길을 연 것이다.
광종의 미친 듯한 숙청과 빛나는 개혁은 당시 어느 계급에 속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고려의 기틀을 세운 개혁군주로 평가한다. 현대판 노비라 할 만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공교육 붕괴와 취업악화로 갈수록 세습자본이 중시되는 이 시대에, 미친 듯한 숙청과 개혁을 펼칠 영웅이 누구인가. 역사의 이름으로 그를 갈망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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