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10.10 19:51 수정 : 2015.04.29 11:46

<열애> 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

황진미의 TV 톡톡

<열애>는 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로, 50부 중 4회까지 방송됐다. 소녀시대 서현의 연기 데뷔로 화제를 모은 가운데, 전광렬과 황신혜가 주연을 맡고, 불륜, 출생의 비밀, 경영권 다툼 등이 나오는 전형적인 재벌 가족극이다.

2000년대 초반, 양 회장이 사위 강문도(전광렬)를 후계자로 지목한 가운데, 회사 창립 20주년 행사가 열린다. 이때 강문도의 악덕 경영의 피해자인 대리점주가 행사장에 난입한다. 강문도가 대리점주를 겁박하자, 고등학생인 강문도의 아들 무열은 이에 항의하고, 지켜보던 양 회장은 무열을 신임한다.

강문도는 무열에겐 냉담한 아버지지만, 내연녀(황신혜)와의 사이에서 난 수혁에겐 다정한 아버지다. 강문도의 외도를 안 양 회장은 무열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는다. 강문도는 유서 공개를 막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고, 그 과정에서 무열의 연인(서현)이 죽는데….

<열애>는 꽤 시사적이다. 시작부터 최근 논란이 된 우유 회사의 ‘밀어내기’를 환기하는 장면을 담는가 하면, 공교롭게도 최근 가장 논란이 된 ‘혼외자’의 존재를 보여준다. 결혼 전부터 두 집 살림을 하며 장인에게 회사를 물려받으면 이혼하겠다고 말하는 강문도의 뻔뻔함은 <추적자> 등에서 왜 회장들이 그토록 사위를 경계했는지 극단적으로 알려준다. 또한 내연녀와 혼외자의 인정욕구를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자극을 건넨다.

그러나 <열애>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강문도와 무열의 대립 구도다. <황금의 제국> 등을 통해 재벌가의 형제나 부부가 적이 되는 것은 익히 보아왔지만, 중년의 아버지와 청소년 아들이 경영권을 놓고 대립하는 광경은 본 적이 없다.

드라마는 강문도가 경영자로나 사적으로 악한이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고, 무열은 아버지의 부도덕에 맞서는 것이자 할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상속자이기에 명분이 있는 것처럼 그리지만, 경영권 다툼에서 선악은 중요치 않다.

강문도는 장인 대신 옥살이를 할 만큼 더러운 일을 해가며 충성한 자신이 왜 새파란 아들에게 밀리는지 납득할 수 없다.

양 회장은 순수함을 지닌 무열이 경영권을 갖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지만, “법을 다 지키며 기업을 경영할 순 없다”는 양 회장의 말처럼 누가 경영권을 쥐든 더러워지는 건 시간문제다.

<열애>의 부자 대립이 드러내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재산이 가장 큰 변수가 될 만큼 계층 이동이 정체된 사회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부와 사회적 지위의 원천은 할아버지에게 있으며, 누가 그것을 상속받느냐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세대를 초월한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다.

삼성의 3대 세습이 보여주듯이, 자본의 형성은 고도성장기에 이미 끝났으며, 형성된 자본은 재분배 없이 자가 증식하며 3대째 세습 중이다. 중산층 상부는 부동산과 교육을 통해 계층 재생산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다. 과거 유일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였던 교육은 공교육 붕괴와 사교육 범람, 조기 유학, 전문대학원 등을 통해 철저히 막혀버렸다.

이미 사람들은 명문대 진학 요건으로 ‘할아버지의 경제력’을 꼽는다. 새로 시작한 하이틴 드라마의 제목은 아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이다. 이제 청소년들은 자신을 자기 계급의 상속자들로 인식한다.

오직 부와 명예의 상속자들만 연애·결혼·출산을 할 수 있고, 상속받을 게 가난뿐인 이들은 ‘삼포세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보다 리얼한 하이틴 드라마의 제목은 없을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황진미의 TV 톡톡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