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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1 16:20 수정 : 2015.04.29 13:51

미필적 고의

황진미의 TV톡톡

요즘 지상파 3사의 공개 코미디에는 노동과 계급의 문제를 다룬 꼭지들이 눈에 띈다.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 <개그 콘서트>의 ‘갑을 컴퍼니’, <에스비에스>(SBS) <개그 투나잇>의 ‘사과나무’, <문화방송>(MBC) <코미디에 빠지다>의 ‘손회장님’의 무대는 회사다. “직장 생활은 갑과 을만 알면 돼”라며 직장인들의 눈치 보기와 술자리에 찌든 사장을 보여주는 ‘갑을 컴퍼니’와 “사과나무가~ 맛있는 사과나무가 되려면~” 하는 뻔한 훈계를 늘어놓는 ‘사과나무’의 부장의 모습은 낯익다. 황당한 업무능력을 보이는 비서에게 “역시 얼굴만 보고 뽑은 애는 뭐가 달라도 달라”라는 ‘손회장님’의 대사는 여성 고용의 실태를 풍자한다. 그러나 이런 ‘정규직 코미디’의 메시지는 한계가 있다.

 <개그 콘서트>의 새 코너 ‘미필적 고의’와 ‘나쁜 사람’은 더 깊게 노동과 계급의 문제를 파고들며 윤리를 반문한다. 또한 <코미디에 빠지다>의 ‘클럽 빅토리아’는 여성 노동에 대한 통렬한 파토스를 남긴다.

‘미필적 고의’에는 택배원이나 설치 기사 등 방문 노동자가 나온다. 그는 빨리 돈을 받아 다음 장소로 가려하지만, 부잣집에서 발이 묶인다. 부자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고상하며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라는 도덕적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막장 드라마 상황으로 수백억대 재산 싸움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고작 몇 천 원을 받으려는 노동자는 열심히 눈치를 보다 뜻하지 않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든다. 쩍 벌어진 계급은 세습 신분처럼 보이고, 노동자는 감정노동은 물론이고 때론 고객의 사생활과 얽히는 스트레스도 감내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인격이 아닌 구조다. ‘착한’ 부자라 할지라도 약자를 적극 배려하지 않는 이상 위선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부자들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리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미필적 고의’를 저지른다. 부자들의 도덕적 방임 속에 오늘도 약자들은 감정을 착취당하고, 임금을 떼이고, 직장을 잃는다.

 ‘나쁜 사람’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는 형사가 범인을 취조한다. 그런데 범인의 사연이 기막히다. 빈집털이를 한 집은 어릴 때 살던 집이고, 유괴한 아이는 입양 보낸 동생이다. 형사가 눈물을 쏟자, 반장이 나선다. 그러나 반장의 추궁은 비인간적 행위가 되고 만다. 형사는 “나쁜 사람, 나쁜 사람” 하며 울먹인다. ‘냉혹한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신파’라는 설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감성 팔이’를 풍자한 것이기도 하고, 범죄 뒤에는 가난·실직·질병 등 사회적 비참이 존재한다는 ‘레미제라블’의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범인과 반장 중 누가 ‘나쁜’ 사람일까. 용산 참사 현장이 그러했듯이, 양극화와 복지 부재로 평범한 사람도 범죄자가 되는 상황에서 진짜 나쁜 건 이들에게 비인간적 대면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닐까.

 ‘클럽 빅토리아’에는 “봉춤 인생 26년, 키메라 봉”이 나온다. 클럽에서 관능적인 춤을 추는 댄서이지만, 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백수인 남편을 부양하는 여성 가장이다. 춤을 추면서 휴대전화를 받아 “엄마 일해”라고 말하면서도 봉춤 리듬을 탄다. 남성 고객은 섹슈얼리티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육체만 보지만, 그들에겐 직업인이자 가족 부양자로서의 삶이 있다. 그는 여느 ‘직장맘’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 동시에 애들을 챙긴다. 수시로 손님들에게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일할 때만큼은 프로이고 싶다”며 춤사위를 이어가는 여성 노동자 키메라 봉에게 뜨거운 연대의 뜻을 전한다. 황진미/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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