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03 20:02
수정 : 2015.04.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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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학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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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톡톡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학교 2013>은 제목 그대로 2013년 학교가 배경인 드라마다. 과거엔 ‘성장 드라마’ 혹은 ‘학원 멜로’ 등의 장르로 불렸지만, 이제 학교는 성장이나 사랑이란 단어가 낯설다. 그 자리에 수능·내신·학원·‘알바’·‘일진’·급식 등의 단어가 채워진다. <학교 2013>은 2013년의 학교, 구체적으로 ‘서울 강북의 인문계 일반 고등학교’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회극이다. <학교 2013>은 공교육 붕괴, 체벌 금지,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학교폭력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학교 밖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변화된 학교 현장에 대한 생생한 실태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아이들의 손을 놓을 때가 아니다”라고 믿는 정인재(장나라)는 문제 학생의 자퇴를 막느라 동분서주한다. 수업은 전체 학생의 흥미 유발을 위해 모둠수업으로 진행한다. 여느 학원물 같으면 그의 ‘선한 의지’가 곧 아이들을 감동시켜 ‘진심이 승리하는’ 모습을 그렸겠지만, <학교 2013>은 “이상만 높은 낭만주의자”의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의 이상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수능형”과 다른 “내신형” 평가로 아이들에게 이중 부담을 지우는 사람이고, “수능형으로 가르칠 실력이 안 되니 시간이나 뺏는” 무능한 교사로 아이들에게 평가된다. 문제 학생을 선도하고 싶지만 교무실에서 답 없는 문자만 계속 보낼 뿐이다. 학생들은 그를 존경하는 게 아니라 불쌍하게 여긴다. 드라마는 그의 안간힘을 안쓰럽게 담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열정’의 한계 또한 명백하다. 그에 비해 강남 학원 강사 출신의 강세찬(최다니엘)의 ‘냉정’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는 수능 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워 기죽이는 선생이다. 그러나 자퇴서를 내고 ‘알바’하는 학생을 찾아간 그가 최저시급과 저학력 인생의 설움을 얄밉게 일러주자 학생이 돌아온다. 드라마는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선생의 역할에 명확한 선을 긋는 강세찬의 합리성을 나름 추인한다.
드라마는 정인재와 강세찬은 물론이고, 우등생과 문제아, 교장과 학부모를 선악의 구도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결핍을 지니고 있다. 기간제 교사인 정인재는 교장과 학부모한테서 끊임없이 교사직을 위협받고, 강세찬은 불법 고액 과외로 덜미가 잡힌데다 학생과의 관계에 심리적 외상이 있다. ‘고객’인 학부모들의 압박에 시달리는 교장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로 전전긍긍이다. 가장 ‘갑’처럼 보였던 학부모마저 예일대생이 아닌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장남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전교 1등 학생은 특목고 학생이 아닌 게 창피하고, 모범생은 극성 엄마 때문에 괴롭다. 학생들은 ‘일진’ 눈치를 보느라 힘들고, ‘일진’들은 학교 밖 ‘형님’들에게 시달린다.
드라마가 그리는 학교폭력 문제는 꽤 심각하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체벌은 금지되었어도 꿈을 잃은 아이들을 벌점과 학칙으로 옭아매어 교실에 잡아두는 것 자체가 폭력이며,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의 도입으로 학교를 오로지 대입 실적으로만 평가하는 사회가 이미 학교라는 공동체에 폭력을 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학생들 간의 폭력만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엄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행위는 혹시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하는, 나아가 사회가 학교에 가하는, 더 큰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시치미인 것은 아닐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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