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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8 17:44 수정 : 2007.03.28 17:44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 칼럼

2·13 합의가 이행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반응이 희한한 희비교차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보수 세력은 미국을 비난한다. 마치 철석같이 믿었던 애인이 갑자기 변심한 것처럼 비분강개한다. 그래서 우리도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다른 한편 마치 남북간 평화가 이뤄진 것처럼 기뻐하는 낭만적 낙관도 번지고 있다. 미국이 제대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둘 모두 일리 있는 판단이긴 하나 성급하다. 냉철하게 사태를 보자면, 2·13 합의는 결코 부시 대통령의 정책적·이념적·근본적 변화에서 온 것이 아니다. 세계와 역사를 선과 악의 이분으로 보는 그가 갑자기 악의 축을 선의 축으로 보게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된 냉엄한 사태에 대한 전술적 변화일 뿐이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라크전은 그 명분을 잃고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북한과 달리 에너지가 풍부한 이란의 핵개발을 좌절시키는 것도 매우 힘들다. 악의 축으로 찍힌 이란과 시리아가 각기 이라크 내의 시아파와 수니파를 지원하기에 내란 종식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철군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의 참패가 전술적 변화의 주요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거기에서도 선군정치를 청산하고 2·13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실용주의를 앞세우게 될까? 그쪽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그것을 당장 정책적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북-미 간 불신은 너무 깊어 그 변화가 전술의 수준에 적어도 상당 기간 머물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이때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비록 그것이 전술의 변화라고 해도 그 방향은 너무나 올바르고 절실한 것이기에 그 수준을 정책의 변화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반도 전쟁 절대 불용을 새삼 다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난 60여년간 분단과 냉전 및 열전의 악조건 속에서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성취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2·13 합의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이 소중한 변화를 한 차원 높여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안전과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먼저 미국과 북한은 2·13 합의를 정책변화로 끌어올려야 한다. 근본주의적 시각을 탈피하여 현실합리적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없는 평화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관리해 내려는 사람들은 가고, 평화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은 힘을 모아야 한다.

6자가 2·13 합의를 착실히 실천하는 동안, 남북간 화해협력의 봄기운은 역사의 늘봄으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봄을 시샘하는 낡은 힘들이 나라 안팎에서 아직도 엄동을 붙잡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가 2·13 이행에 납치자 문제로 딴죽을 거는 일본 당국의 의도적 역사 건망증에 일갈했다. 지난날 군대위안부로 납치되어 성노예로 부림당한 억울한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 건망증으로 더 아프게 한 일본 총리를 향해 그 주간지는 “아베 총리,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국무부도 그 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2·13의 늦봄이 늘봄이 될까봐 불안해하고 그것을 시샘하는 세력에 대한 영국 정론지의 용기있는 소리는 또하나의 봄소식으로 들린다. 그러나 봄에 들뜨지 말자. 기뻐하거나 분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늦봄이 늘봄이 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 봄은 요즘의 변덕스러운 기후처럼 언제 증발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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