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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6 18:21 수정 : 2006.07.26 18:21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한완상칼럼

최근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몇 가지 일을 소개하고 싶다. 지난 2월 초 미국적십자사 본부를 방문해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를 도울 성금을 전달했다. 2천만달러 성금의 잔금 580만달러를 전달하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피해자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더 소중히 여겨 달라고 했다. 미국적십자사 총재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감사해했다. 막강한 미국사회에서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있는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베푸는 이 보람, 이것이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확실히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값진 희열이었다.

재난의 현장인 뉴올리언스에 가보았다. 전쟁 현장보다 더 비참했다. 150만 시민의 삶이 중단된, 죽음의 적막함을 목도했다. 세계 최강국조차 자연재난 앞에 너무나 무력해진 모습에 새삼 놀랐다. 폐허를 재건하는 데 적어도 수백조원이 든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에 그간 수백조원의 돈을 쏟아부어온 미국 정부는 복구자금을 당장 염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 같지 않았다. 자연재해 앞에 왜소해진 초강대국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자연환경을 깔본 인간의 교만과 탐욕의 업보를 보는 듯했다. 이것은 동남아 지진해일 현장에서 도무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전율의 파동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안내해주던 70대 후반의 동포 한 분이 있었다. 그는 수십 년 소매 잡화상을 비교적 큰 규모로 경영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모은 분이었다. 카트리나로 가게가 부서진데다 약탈까지 당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의 가게를 직접 둘러보았다. 장사가 잘될 때는 한 달에도 수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은 재난과 약탈로 짓밟힌 가게를 보여주면서도 조금도 분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다. “가게 둘을 홀랑 날렸으나, 대신 세 가지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그간 돈 버는 재미로 잊고 있었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역시 가게 일에 매여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는데, 이제 가족들과 대화하며 살게 되었으니 감사하지요. 셋째로 친구들을 그간 잊고 잃어버렸는데, 재난을 당하고 나서야 친구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소중한 삶을 되찾았다고 흐뭇해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그에게 고마운 조국이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 가슴이 찡했다.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카트리나로 피해를 본 동포 가정에 적십자 성금을 분배하는 현장에서 몇 마디 격려를 했다. 망연자실할 뿐인, 동포들의 절망적인 표정들을 보고 이렇게 위로했다. “절망과 희망은 종이 한 장 차입니다. 이러한 재난의 참상 속에서 희망을 오래 지니기 힘들 것입니다. 희망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곧 절망으로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떤 악조건에서도 인내심과 믿음을 지닌다면 여러분의 희망은 계속 희망으로 살아남아 여러분에게 용기를 줄 것입니다.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조국과 인도주의 운동이 여러분의 인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동포들은 고맙다고 했다. 미국내 다른 소수민족들은 한국 동포들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국과 적십자라는 인도주의 운동단체가 있음을 새삼 감사한다며 뜨겁게 내 손을 잡았다. 내 가슴에는 또다시 잔잔한 감동이 일고 있었다. 이런 감동의 물결이 모여 용솟음친다면 그 어떤 태풍과 폭우의 공격도 우리를 결코 침몰시키지 못하리라는 믿음이 수해를 당해 아파하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겠나.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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