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7 20:59
수정 : 2006.06.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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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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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칼럼
얼마 전 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인 두 분이 엄청난 큰돈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약속했다. 정말 대단한 결단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회적 반응은 냉담한 것 같다. 요즘 세계적인 ‘슈퍼 거부’들의 기부행위는 유행처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거부인 빌 게이츠는 30조원에 이르는 큰돈을 이미 그의 재단에 기부했다. 가장 부유한 사람이 가장 존경을 받게 되는 바로 그곳에 건전한 자본주의가 활짝 꽃필 수 있다. 지난해에 게이츠 부부는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대단한 명예다. 그런데 부자일수록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왜 그런가?
부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게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 첫째,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테드 터너 등은 존 록펠러나 앤드루 카네기 같은 제1세대 미국 거부들과는 달리, 그들의 생애 끝머리에 가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창 돈을 잘 벌 때 엄청난 큰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역설했지만, 오늘의 슈퍼 거부들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자랑스럽게도 더 많이 내놓고 있다. 그래서 더 큰 감동을 준다.
둘째로, 그들은 사사로이 자기 이해와 관련된 곳에 헌금하지 않는다. 모교, 자기 교회나 교단, 고향, 친척 등에 헌금하기보다는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 저 먼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들과 병든 부녀자를 위해 더 아낌없이 바친다. 평화와 생명, 건강과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큰돈을 내놓는다. 직계 자녀들에게는 최소한의 재산만 유산으로 남긴다. 게이츠의 경우, 그의 전체 재산의 오천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유산의 규모가 클수록 그것은 자녀들에게 돈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독자적 개척의지와 인도주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부자병’에 걸리게 하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그 대신 자녀들에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역사적·사회적 큰 명예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셈이다. 그래서 감동을 준다.
우리는 어떠한가. 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재미로만 돈을 번다면, 본인에게도 큰 명예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사회에도 감동을 남기지 못한다. 이런 기업풍토 속에서 건전한 자본주의가 뿌리 내리기 쉽지 않다. 특히 편법을 활용하여 재산을 물려주려는 풍토가 있는 한 자본주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최근에 ‘인류애적 자본주의’란 말이 눈길을 끌고 있다. 거액을 기부하되 그저 나누어 주는 자선행위에 끝나지 않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여 될수록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공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투자하듯 기부하여 잉여금을 확대시키면서 그것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더 넓게 활용한다. 그래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인간적 자본주의를 작동시키게 한다.
대체로 인류애적 자본가들은 상속세를 반대하지 않는다. 지금 조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 폐지를 놀랍게도 미국의 슈퍼 거부들이 거부하고 있다. 게이츠, 버핏, 소로스가 바로 그들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상속세 폐지는 양극화를 부추기며, 둘째로 기부문화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드는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기보다는 감동적 기부문화에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더욱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 이 수준에 이르게 될까?
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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