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9 22:23
수정 : 2015.03.10 11:12
[심층리포트]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 늦지 않았다 (하)
박 대통령·최 지사 ‘분산 반대’
‘내년 총선 지역표심 의식’ 해석
시민사회 등 합리적 의견 묵살
IOC ‘경제올림픽’ 제시하는데
한국 체육계 지도자들은 ‘뒷짐’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올림픽 분산개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조양호 평창조직위 위원장은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천재지변이 없는 한 분산은 없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지금 분산개최를 논의하는 것은 국민 혼란을 부르고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정부 쪽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계자도 “이제는 끝난 일이다. 내가 아는 한 분산개최는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나 조직위원회에서 분산개최를 극도로 꺼리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으로 분산개최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녀 아이스하키장, 가리왕산 활강장, 피겨·쇼트트랙 빙상장 등 4곳만 옮겨도 공사비만 3658억원 줄일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대회 뒤 수백억원을 들여 남자 아이스하키 경기장과 개·폐회식장의 일부 시설을 철거해야 함에도 불도저처럼 밀고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창조직위 관계자는 “분산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분산개최는 조직위원회 차원을 뛰어넘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라고 했다.
정치권이 겨울올림픽을 바라보는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주재 때 한 발언에 집약돼 있다. 박 대통령이 “분산개최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밝힌 뒤 정부 부처에서 자생적으로 이뤄졌던 국내 분산 가능성 모색도 싹이 잘렸다.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정치적 결정이 상급에 있기 때문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1월2일 새해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분산개최 등 분산개최에 대한 논의는 이미 끝난 얘기”라고 밝힌 바 있다.
중앙정부의 재정이 10조원 이상 투입되는 국가적 사업으로 국민적 관심이 높고, 재정 자립도가 떨어지는 지방정부의 적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 뻔한데도 정부가 원안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내년 예정돼 있는 총선이 스포츠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치권이 행여 분산 얘기를 꺼냈다가 ‘강원도 올림픽’이란 관념이 강한 지역주민들한테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당이나 야당 모두 표를 의식하는 것은 똑같다. 인천이나 전남이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했다가 빚더미에 올라 시민 복지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는 형편이 돼도 대회 뒤 후임자의 몫일 뿐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인 결정이 바른 결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정치권한테 중요한 것은 당장의 표심이고, 유권자의 정서다.
물론 강원도민 모두가 원안 고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강원 도내에서도 지역이나 이해에 따라 분산안에 대한 선호가 갈릴 수 있다. 사후관리 비용이 대회 개최에 투입된 중앙정부의 재정투입 효과보다 큰 쪽에서는 분산이 현실적이다. 강릉시는 올 초 남자아이스하키경기장의 원주 이전을 검토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분산개최 논의는 끝”이라는 발언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조직위원회나 문체부 안에서도 분산개최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학계나 체육단체에서 토론을 요구해도 대응이 없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도 정치권에서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한데 누가 말하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체육단체의 한 관계자도 “분산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견적이 나왔다. 그런데도 문체부나 조직위가 정권의 눈치만 본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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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올림픽,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어젠다 2020’은 어려움에 처한 아이오시의 고민의 결과다. 2020년부터라고 하지만 평창이 주체적으로 활용해 올림픽 무대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올림픽 개최가 중요한 아이오시는 일단 한국 정부와 조직위의 원안 고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분산안을 검토한다면 겨울올림픽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 만큼 수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정부나 조직위가 분산개최 반대 입장을 재차 밝혔음에도 ‘분산개최 논란’은 여전하다. <한겨레>가 ‘국내 분산개최안’을 건축설계 업체와 구체적으로 검토한 결과, 분산개최를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최대 두달이다. 이 기간 안에 발상의 전환을 하면 된다. 구닐라 린드베리 아이오시 평창조정위원회 위원장이 오는 17~19일에 올림픽 준비상황 점검을 위해 강릉에 온다. 이 기회에 분산안에 대한 초보적인 얘기를 할 수도 있다. 류태호 고려대 교수는 “시설이나 경제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회 이후에 지속될 누적 적자다. 올림픽이 괴물 유산으로 남을 것이 뻔한데, 과연 누가 책임을 질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윤형중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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