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1 17:56
수정 : 2007.07.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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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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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칼럼
한국은 지금 좋은 인물에 목말라 있다. 여당은 실질적으로 아예 없는 상태에서 몇몇 주자들이 나서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작업에 여념이 없다. 과거에는 없던 사태며, 모두 한국 정치의 위기를 상징한다.
국민이 어떤 인물을 찾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고통 없이 잘 살게 해줄 인물을 찾을 터이지만, 그런 인물은 없을 것이다. 지식인들은 앞으로 국정을 개혁하여 선진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을 내건다. ‘개혁’과 ‘선진화’가 이번 대선의 비전 구호가 될 것이며, 다음 정권의 정책기조 역시 이 두 가지를 표방하면서 추진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개혁과 선진화 비전은 번번이 알맹이 없는 공허한 구호로 끝났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짙다. 왜 그런가.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우리나라의 제도와 관행에는 고쳐야 할 점이 너무나 많아서, 개혁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개혁 없이 옳은 보수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라가 필요로 하는 개혁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사심 없이 그것을 추진할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선진화를 위해선 거기에 필요한 정신적, 지적 기초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 산산조각이 난 교육의 실패를 만회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합리한 대학입시 제도를 완전히 잘 아는 사람은 오직 수험생의 모친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교육을 이렇게 만든 일차적인 책임은 역대 교육당국에 있겠지만, 나 자신을 포함한 각급학교의 역대 교직원 및 국민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 한동안 이공학이 문제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포기한 듯 그 목소리는 싹 가라앉았다. 어떤 이공학자의 말에 따르면, 최고 수준의 졸업생을 제외하면 많은 공대에서는 미적분도 잘 모르는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에 과장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공학의 위기가 해소됐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에는 인문학 위기론이 대두하여, 교육부에서 인문학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 인문학의 위기가 해소될 수는 없다는 것은 이공학의 경우와 다름이 없다. 대학뿐 아니라고 본다. 유치원에서부터 중·고등까지도 교육 개혁 없이는 선진화는 없다.
나는 평소 평준화, 한글전용 등에 반대하고, 각급 학교의 자율화 확대를 주장해 왔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입시제도 못지않게 교육 내용의 빈약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대학입시에 관해서는 모두 열을 올리면서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도 교직원도 당국도 매우 무관심한 것이, 이 나라 교육의 왜곡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는 본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이 규율 없는 과보호 속에서, 당연히 체득해야 할 가정윤리와 사회도덕, 인문과 자연에 대한 기본소양이 소홀히 되고, 배움의 힘(학력)은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저하한다.
우리는 나라의 기본을 다지는 데는 소홀히하면서, 선진국의 모양만은 열렬히 주장한다. 선진국이 되는 조건은 수출이나 산업의 실적보다도 오히려 교육, 가치관, 가정윤리, 사회도덕 등의 성숙 여부다. 우리의 소비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개인의 빚이 늘어만 가고 있음에도 쓰임쓰임이 너무 헤프다. 경제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근검절약에 있는데도 이 나라에서는 근검절약의 정신이 매우 엷어졌다. 물가와 임금 수준은 세계 최고다. 이것은 선진국이 될 기상이 아니다. 포퓰리즘이 판치는 사회에서, 개혁의 고통과 선진화의 시련을 국민에게 요구할 만한 지도자를 찾을 수 있는가. 나라의 명운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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