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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9 17:54 수정 : 2007.05.09 17:54

조순 /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조순칼럼

5월5일 어린이날에 나는 여섯살배기 막내손녀를 강릉 옛집에 데리고 갔다. 옛 한옥이고, 선조와 부모의 땀이 배어 있는 곳이라, 나에게는 보통집이 아니다. 나무와 꽃이 싱그러워, 집주변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란 아이에게 시골 광경이 어떻게 비칠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밑창을 밀고 들락날락 하는 재미, 커다란 부엌에 걸려 있는 가마솥, 아궁이에 들어가는 불꽃, 모두가 상상도 못한 광경이라 “재미있다. 재미있다” 하면서 좋아했다. 어디까지가 할아버지 땅이냐, 할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부자가 됐느냐고 묻는다. 이 아이는 이날에 본 광경을 아마 일생 동안 잊을 것 같지는 않았다.

라디오 방송에 따르면 우리나라 젊은 부모의 52%가 ‘조기유학’에 찬성한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훌륭한 부모 같지만, 이 52%라는 수가 우리나라 교육의 실패와 지성의 빈곤을 상징한다. ‘조기유학’이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단어에 어린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좀먹는 기성세대의 이지러진 교육열이 배어 있다. 어린이 교육의 기본은 무엇인가. 건전한 정서, 건전한 가치관, 건전한 신체를 기르는 데 있다. 그것을 확보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천하의 그 무엇도 부모의 사랑과 훈육을 대체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을 조기유학으로 외국으로 보내는 부모는 결과적으로 부모 고유의 책임을 외국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전가한다. 심하게 들릴지 모르나 부모의 ‘직무유기’를 의미한다. 과연 미국 학교에서, 어릴 때 체득해야 할 집과 부모에 대한 사랑, 선조와 나라에 대한 긍지, 민족과 인류에 대한 사명감이 생겨날 수 있는가. 그런 정서 없는 교육이 좋단 말인가.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난사 사건은 분명히 조승희 개인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조승희군이 빚은 참극에 못지않게 이 나라 사람들이 보인 반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모두들 한-미 관계에 끼치는 영향을 우려할 뿐, 조군의 정신착란에 관련된 여러가지 사연에 대해 깊은 성찰은 없었다. 총기사건과는 무관하겠지만, 조기유학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을 정신장애자로 몰아넣는 많은 요소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문화일보>에서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제목의 사회면 기사를 본적이 있다. 어느 명문대학의 총 학생회장 선거에서 후보들이 내건 선거공약에 관한 기사였다. 그 공약의 내용은 학교 부근의 어느 호프와 음식점의 음식값을 20% 할인받도록 하겠다는 것, 시험 ‘족보’ (기출문제정리집)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는 것 등등이었다고 한다. 신문은 이 나라 최고급 대학의 총학생회장 후보의 포부가 고작 이렇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학생 후보만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들의 가벼움을 조장한 것은 무엇인가. 조기유학 찬성 52%로 상징되는 부모의 가벼운 책임감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인문학의 몰락을 외친 대학들은 이제는 또 3불정책 반대를 들고 나왔다. 나 자신도 3불정책에는 부분적으로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3불정책을 뒤집으면 교육이 살아난다고는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의 문제는 모두 입시 문제에 연유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입시제도에도 문제는 있지만, 보다 더 깊은 문제는 가정교육의 질, 학교교육의 내용에 있는 것이다. 유행만 좇고 알맹이 없는 교육,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것은 또 나라를 영영 멍들게 하는 원인이자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조순 /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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