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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14 17:39 수정 : 2007.02.14 17:39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조순칼럼

“앞으로 십년 후면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가 걱정이다”라는 신음소리를 듣는다. 기업의 이노베이션이 부족하다는 우려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다는 소리도 있다. 확실히 현재의 추세가 장기화된다면, 우리 경제는 설 땅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 문제의 징후에 불과하다. 징후를 가지고 걱정해도 소용은 없다. 문제의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잘 알고 4800만인이 타고 있는 한국호의 방향을 확실히 잡는 일이다.

중국호는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그것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말은 듣는다. 그러나 중국은 필요에 따라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추구하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은 경제와 사회의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옛날 공산주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통제 강화의 이유는 숨고르기를 하면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의 길을 다지자는 데 있는 것이지, 방향을 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호도 우선은 순항의 길을 찾았다. 일본은 개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종래의 방향을 고수함으로써 안정 성장의 길을 되찾았다. 우선 민간 부문을 보자. 기업의 기술개발 및 높은 수출과 투자, 가계 부문의 높은 저축 등, 옛날 그대로다. 정부 부문은 오락가락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극도의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옛날부터 낯익은 방향이며, 여기에는 개혁이란 별로 없다. 불황 ‘극복’의 비결은 개혁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다운 개혁을 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일본이 이 방향을 고수함으로써 엔화의 평가가 하락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고 있어, 이것이 세계경제의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이 방향이 얼마나 유효할지 낙관할 수는 없어 보인다.

지금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세계경제의 세력도가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과학기술은 이미 선진국의 독점물이 아니고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후진지역에서 세계 첨단 기술이나 이론이 많이 나올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중국이 우리나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또, 우리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세 나라가 모두 자기의 방향에 따라 순항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모두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세 나라는 공생의 길을 찾을 것이고, 동아시아는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한국호는 지금 금년 성장률이 4%냐 5%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성장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 것이다. 나침반 없이 방향을 잃은 배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곤란하듯이, 방향 없는 경제는 속력을 내면 낼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호의 방향은 무엇인가. 뚜렷한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선장·조타수·기관사, 그리고 선원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기주장만 한다. 정치권에도 리더십이 없고, 업계에서도 리더십이 나오지 않고 있다. 배가 방향을 잃고 있으니, 뱃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방향은 누가 어떻게 잡는가. 그 방향은 선장과 선원들이 협력해서 잡아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는 방향을 선장이 독단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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