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30 21:07
수정 : 2006.10.30 21:07
조순칼럼
소련이 무너진 뒤로 세계는 글로벌 경제질서 아래 놓이게 됐다. 이 체제는 유일 초강국인 미국의 필요에 따라, 미국 주도로 추진된 세계질서다. 미국은 세계로 하여금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 작은 정부’를 뼈대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패권을 다지고자 했다. 미국이 가장 주목한 나라는 중국이었는데, 글로벌 질서 아래서는 중국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 후 나타난 현실은 미국의 애초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질서 아래서 미국도 상당한 이득을 보고는 있으나, 미국보다는 오히려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나라,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헨리 키신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원래 미국의 정치인, 특히 공화당 인사들은 중국을 소련과 거의 같은 나라로 봐 왔다. 부시는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중국을 종래의 ‘전략적 동반자’가 아니라 ‘전략적 경쟁자’라고 규정함으로써 거의 적성국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민주당의 대중관념은 이보다는 부드럽지만, 역시 오십보 백보일 뿐, 우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후 이라크 전쟁의 차질, 대북한 관계에 나타난 북-중 관계 경화, 그리고 중국의 대미 유화노선 등으로 미국의 대중감정은 상당히 호전됐다. 하지만, 중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 누적,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 등은 미국 정치인의 대중 경계심과 라이벌 의식을 자극하여, 정가의 대중시각의 호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업계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중국 경제를 잘 알고, 그 내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2050년에는 중국은 미국과 국내총생산(GDP)에서 동일 수준이 되고, 인도는 세계 제3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것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최고급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금년 1월에 벌인 제9차 미국 최고경영자 의식조사에서, 미국 최고경영자들은 중국을 가장 두려운 상대로 보고는 있으나, 중국에 투자하고자 하는 회사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중국을 배척하기보다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그 발전 잠재력을 활용하는 전략을 찾고자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보고서를 보고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미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은 21세기 전반에 살고 있는 데 비해, 정부는 20세기 후반에, 의회는 20세기 중반에 살고 있다는 인식이 그 중의 하나다. 현실과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괴리 속에서 부시가 골드만삭스 회장 행크 폴슨을 재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중국을 일흔차례나 방문한 폴슨은 21세기 초반에 살다가 갑작스레 20세기 후반으로 돌아가서 놀랐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본 그는 곧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지도부를 골고루 만나서 미국 실정을 설명했다.
중국 수뇌부의 미국에 대한 이해에는 그런대로 균형이 잡혀 있으므로, 폴슨과의 대화는 원활했을 것이다. 중국은 근소하나마 위안화의 절상을 허용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우선은 27.5%의 관세를 중국 수입품에 물린다는 엄포를 자제하고 있다. 폴슨은 미국과 중국,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좋은 공헌을 했다. 세계경제는 이미 20세기로 돌아갈 수가 없다. 미국의 27.5% 관세 부과 등 반글로벌식 정책은 중국보다도 오히려 미국 자체에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세계는 그것이 몰고 올 세계 경제의 경착륙을 감당할 만큼 굳세지 않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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