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8 22:04
수정 : 2006.10.0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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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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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칼럼
지난 3년 반 동안 이 나라 국정을 주도해온 386 세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진보정치연구소와 한길리서치가 벌인 여론조사에서, 386 의원들은 17대 국회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집단 1위(78.8%)를 차지했다. 개혁의 초심은 온데간데없고, 집단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신문에 게재된 그들의 회한의 소리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청운의 뜻을 품고 화려하게 등장한 젊은 세대가 이렇게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우리나라 실력의 한토막이기 때문이다.
386이 외쳐온 개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기존의 모든 것을 몽땅 부인하고 새 사람들이 들어와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바꾸어놓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나라 구석구석에 깔려 있는 비정상적인 제도와 관행을 정상화하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이 나라에는 비정상적인 것이 너무 많다. 우선 가정부터 그렇다. 기러기 아빠·엄마, 세계 최저의 출생률, 세계 최고의 자살률, 가구당 3600만원의 부채, 모두 정상이 아니다. 교육이 정상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안다.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교육은 우리나라 최대 최악의 부실 산업이다. 사회와 정치의 비정상은 더 지적할 나위가 없다. 개혁이란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여기에는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다. 좌파, 우파의 선명한 색깔도 있을 수 없다. 386은 색깔을 따지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386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마음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도 아니다. 386의 지금의 처지에 놀라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패의 이면에는 기성세대의 책임도 있다. 준비 없는 그들에게 권력이 돌아가게 한 것은 기성세대였다. 386은 외환위기 이전 1970~80년대의 저항 비전을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적용하려다 많은 차질을 빚었다. 신자유주의의 부산물인 양극화와 정부 역할 축소의 대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끝내 갈 길을 찾지 못했다. 좌고우면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결국 처세를 위주로 하는 기성세대의 행태뿐이었다. 그들은 기성세대를 미워하지만, 미워하면서도 닮아갔다.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국민과의 거리도 날이 갈수록 멀어졌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젊은이가 대부분 그렇듯이 그들도 역시 이 나라의 저열한 교육과 포퓰리즘의 희생자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회한을 남의 일처럼 여길 수 없다.
그러나 386이 명심할 일이 하나 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성도 좋고 회한도 좋지만, 공개적으로 푸념을 털어놓을 때가 아니다. 아직도 500일이나 남아 있다. 나라는 지금보다도 더 나빠질 수가 얼마든지 있다.
칭기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를 섬기면서 몽골의 나쁜 버릇을 고치는 데 크게 기여한 원나라 명상 야율초재의 말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하나의 좋은 일을 추가하는 것보다, 하나의 나쁜 일을 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한 일 중에는 후세에 누를 끼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중과세를 통해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에 너무 과감하지 말기를 바란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비전은 외환위기 이전의 그것이다.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정을 다하기 바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그렇다. 만신창이의 몸과 쫓기는 마음으로,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와 제대로 협상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만절이 중요하듯이, 정권에는 말년이 중요하다. 자중자애하기를 바란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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