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9 19:26
수정 : 2006.06.12 11:11
|
Cho Sun
|
조순칼럼
1차대전이 끝난 직후, 경제학자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저서에서, 당시 유럽의 장래를 생각할 때, 특히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첫째는 유럽의 질서는 취약한 기초 위에 서 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탄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둘째는 유럽 사회의 변동을 가지고 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사정으로는 중부 유럽의 인구 동태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케인스의 견해가 탁견이었다는 것은 87년이 지난 오늘에 더욱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거의 모두 노령화 진전, 출산율 감소, 이로 말미암은 경제 활력의 감퇴에 직면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동유럽, 남미 등의 후진지역에서 들어오는 노동인구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지금까지 궂은일을 맡아온 손님 근로자들에 대한 배척운동이 격화하고 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헌법 제정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현대판 만리장성이 쌓이게 됐다. 가뜩이나 심각한 불균형에 시달리는 세계경제에 인구대란이 겹침으로써 국제질서는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확실한 선진국이 아닌데도, 노령화와 출산율 저하 현상은 구미에 못지않게 급히 진행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1.08을 기록하여, 나라 장래에 대한 위기의식이 일고 있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재정지출을 통한 출산 촉진책을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오늘처럼 급격히 떨어진 요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국민의 마음이 빗나간 경쟁의식으로 항심(恒心)을 잃은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중심이 없는 것이다. 좋은 아이를 낳아서 똑바로 가르치자면, 가정이 편안해야 할 터인데,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부모의 조급한 마음에는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가가 많이 올라서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든다. 부부 맞벌이가 아니고는 살림을 꾸리기가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비용이 엄청나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남이 하니 나도 해야 한다. 유치원 비용만 해도 웬만한 부부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나이가 되면 기러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빗나간 부모의 경쟁의식이 알토란 같은 아이들을 정서 장애자로 만들고 있다. 극단적인 만혼이 예사가 되면서 이혼이 늘고 있다. 이런 사회현실에서 아이를 가지고 싶은 부부가 많을 리 없다. 농촌에서는 외국 여성이 아니고는 며느리를 구하기 어렵게 됐다.
지금 한국사람이 하는 많은 일들이 극단적이고 단선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정치, 선거, 자유무역협정, 데모, 운동, 응원, 그리고 그 밖의 주변 여러 일들이 내가 보기에는 극단적이고, 외국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극단이 아니고는 마음의 빈구석을 메울 수 없는 것 같다. 세계 최저 출산율은 여러 극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환영할 수는 없다. 좀더 많이 낳아서 아이들의 능력을 잘 길러줄 수만 있다면, 출산율이 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지금처럼 어렵다면, 출생률이 는다는 것은 국민정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요체는 출산율이 아니라, 낳은 아이들을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에 있다. 세계적으로 조밀한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에서 앞으로 고용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 예견된다면, 단선적인 산아촉진 정책은 올바른 인구정책이 못 될 것이다. 여유를 가지고 먼 장래를 내다보기 바란다.
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