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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3 18:15 수정 : 2019.12.24 02:44

[짬] 정수기업체 한우물 강송식 대표

정수기 업체인 ㈜한우물 강송식 대표. 강성만 선임기자

“내 맘 편하려고 광고해요. 열통이 터져서요. 미군이 한국에 있으려면 집세를 내야 한다는 광고도 하려고요. 나중에 미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도 할 생각입니다.”

내년 설립 35년인 ㈜한우물 강송식 대표의 말이다. 강 대표는 최근 <한겨레>에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올려달라는 미국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 광고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손을 잡고 남과 북을 오가는 사진 위에 ‘이제부터 우리끼리…’라는 제목이 붙은 광고도 실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83세인 강 대표가 작년 5월 이후 <한겨레>에 낸 의견 광고는 50회를 넘는다.

직원이 80여 명인 그의 회사는 전기분해 방식을 쓰는 약알칼리수 정수기 전문업체다. 고객은 5만 명이 넘는단다. 지난 20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 근처 회사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왜 의견 광고냐고 하자 그는 이번 광고 이야기를 했다. “내 나름의 계산이 있었죠. <한겨레>에 광고가 나오면 미 대사관에서 안 볼 리가 없어요. 한국에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게 미국 정부에 전달된다는 얘기죠. 제 광고가 나간 뒤 비슷한 의견 광고가 <한겨레>에 잇달아 실리더군요. 제가 마중물 역할을 한 거죠.” 덧붙였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통일은 안 돼더라도 협력은 해야죠. 문재인 정부가 조금 더 강하게 남북 화해 정책을 추진했으면 해요.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문을 닫을 때 미국 정부 허락을 받은 게 아니잖아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도 우리가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강 대표가 최근 <한겨레>에 낸 의견 광고.

강 대표가 지난해 5월 <한겨레>에 낸 의견 광고.

그는 <한겨레> 보는 재미로 하루를 시작하는 창간 독자다. “대한민국이 잘 되려면 <한겨레>가 커야 해요. 눈치 보지 않고 올바른 소리 하는 신문은 <한겨레> 밖에 없어요.”

한우물 정수기는 다른 업체 제품과 달리 세 개의 노즐에서 약알칼리, 강알칼리, 약산성수가 따로 나온다. 약알칼리수만 먹고 다른 물은 세안이나 세탁 용도로 쓴단다. 강 사장은 자사 고객이 <한겨레> 독자와 비슷하다고 했다. “별난 분들이죠. <한겨레> 보는 분들이 구독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고객도 그래요. 대부분 입소문으로 한우물 정수기를 알게 된 분들이죠. 우리는 전문 영업사원이나 영업조직이 없어요. 가끔 <한겨레>에 광고나 합니다. 대리점도 없죠. 하지만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갑니다.”

그는 기자를 보자 바로 자사 정수기 체험 후기가 담긴 책자를 건넸다. 한우물 물을 먹고 건강에 도움이 됐다는 여러 사례가 실렸다. 함께 건넨 다른 책자엔 약알칼리수는 산성화된 체액을 약알칼리성으로 바꿔주고, 만병의 근원인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다. 그는 기자에게도 자사물 두 박스를 먹으면 바로 피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우물을 만나는 날은 복 받은 날’이라고 그가 외치는 이유이다.

그는 한의학 치료 요법인 부항 전도사이기도 하다. 회사에 부항 치료 세트 수백 개를 쌓아놓고 고객 등에게 선물로 준단다. 이유를 묻자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해서”란다. “교사 시절인 70년대 후반에 간염과 동맥경화, 고혈압 때문에 수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두세달 병원 치료에도 좋아지지 않았는데 자연 식이요법과 부황 치료로 좋아졌어요. 그리고 20년 교직 생활을 정리했죠. 부항으로 쉽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리려고요.”

전북 군산이 고향인 강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나와 서울과 부산 지역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70년부터 6년간 모교인 경기고 교단에 서기도 했다. 3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경기고 시절 잊을 수 없는 스승 한 명으로 강 대표를 꼽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그가 담임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비판 등

작년 5월부터 50회 넘게 ‘의견 광고’

“남북협력도 못하니 열통 터져서요”

사대 나와 경기고 등 교사 20년

박원순 시장·황교안 대표 ‘은사’

“나홀로 ‘전교조’ 힘겨워 그만뒀죠”

그는 20년 교사 시절을 두고 “아이들과 잘 지냈다”는 한마디 말로 요약했다. 이 말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야구 명문인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불린다. 이 영예로운 수식어가 붙은 게 72년 7월 19일 황금사자기 부산고와의 결승전이었다. 군산상고는 1대4로 패색이 짙던 9회 말 5대4로 기적의 역전승을 일궜다. 결승전 때 군산상고를 응원하는 1루 스탠드에는 1학기 기말시험을 마친 경기고 재학생 수백명이 자리했다. “기말시험이 끝난 뒤 우리 반 아이들이 날 찾아와 선생님 고향 팀이 4강에 올랐다며 응원 가야죠 하더군요. 4강 땐 우리 반 아이들만 갔는데 이 사실이 알려져 결승전에는 다른 반 아이들도 왔어요.”

아이들과 잘 지낸 비결이 뭘까? “수업 외에 다른 얘기를 들려준 선생이 저 말고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경기고 입학을 준비할 때 배가 고파 기절한 적도 있어요. 고향에서 무작정 상경해 서울의 한 인쇄소에서 숙식하며 일할 때였죠. 경기고 시절엔 3년 내내 입주 가정교사를 했어요. 그때 잘 먹고 잘 쓰는 집의 부부 관계나 식구들의 모든 것을 보면서 이게 과연 잘 사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죠. 다 경기고나 서울대를 나왔는데 부부 다툼이 끊이지 않더군요. 잘 산다는 게 마음이 편한 것이라는 그 간단한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죠. 그래서 교사 시절 급훈을 ‘정’이나 ‘정을 주고 살자’고 정했죠.”

강송식 대표. 강성만 선임기자

중국 시인 도연명이 남긴 한 문장도 교사 강송식에게 큰 영향을 미쳤단다. “도연명이 고향 땅에 보내는 편지 맨 앞에 ‘그 또한 다른 사람의 아들이니 잘 대해주라’고 썼어요. 편지 심부름을 하는 그 아이도 누군가에는 ‘벌벌 떠는 내 자식’이라는 거죠. 이거 엄청난 말입니다. 교사 시절 이 말을 만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요.”

아이들과 잘 지낸 교사가 40대 중반에 부항 때문에 퇴직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부항을 핑계로 그만둔 거죠. 그 시절 제가 1인 전교조였어요. 학교에서 이거 아닌 데 싶거나 옳지 않은 것은 못 참았어요. 다른 학교 평교사들도 학교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강송식 불러야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체제나 교육계가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유신 때 형무소를 가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알맞게 피한 거죠. 도도하게 흐르는 물을 나 혼자 막기에는 힘겨워 학교를 그만뒀죠.”

1973년 경기고 1학년이던 고 노회찬 전 의원 등이 주동한 ‘경기고 반유신 유인물 배포 사건’도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내가 학생들과 가장 가까우니 학교에 수사본부를 차린 경찰이 나를 배후로 의심했어요. 모른다고 하니 경찰이 뺨을 때리려고 해요. 때리라고 하니 못 때리더군요.”

그는 지금도 직접 차를 몰아 출퇴근하고 술자리도 피하지 않는다. “상복하는 약이 하나도 없으니 건강하다고 해야죠.” 훗날 은퇴 뒤 뭘 할 것인지 물었다. “어디 가서 사주를 보면 먼저 역마살이 나와요. 어디 안 가면 얼마 있다 몸이 뒤틀려요. 그럼 차를 가지고 떠납니다. 현역에서 물러나면 구름에 달 가듯 신선처럼 세상 유람을 해야죠. 교사 퇴직자들이 나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그들이 부러워요. 그들이 바로 신선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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