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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9 00:01 수정 : 2019.12.19 02:13

[짬] 고 양상현 교수의 유작 펴낸 손현순 교수

손현순 차의과학대학 교수는 지난 5일 막 출간된 남편 양상현 교수의 유작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사진>을 품에 안은 채 인터뷰를 했다. 사진 김경애 기자
“그날 처음 ‘그리피스 컬렉션’의 봉인을 풀던 순간 남편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지막날까지 밤새워 ‘사진집’ 출간을 준비하며 즐거워하던 그 모습도 생생하고요.”

지난 5일 고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 이름으로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사진>(눈빛)을 펴낸 손현순 차의과학대 교수는 남편의 4주기를 맞아 유작을 마무리해낸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그날’은 2008년 안식년 연수중이던 남편과 함께 미국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학의 수장고에 묻혀 있던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자료 상자를 열었던 날이다. ‘마지막 날’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15년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하기 전날이다.

2008년 미국 럿거스대 도서관 수장고

사진 500여장 등 ‘한국자료’ 모두 찍어와

남편 양 교수 2014년말 첫 학회 발표

이듬해 책 편집 작업중 불의의 사고사

4년만에 재미 유영미 교수와 함께 출간

미국 뉴저지주립 럿거스대학의 도서관에서 소장중인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관련 사진들. 지난 2008년 양상현 교수 일행이 처음 상자를 열었을 때 모습이다. 사진 손현순 교수 제공
‘그리피스 컬렉션’은 <은자의 나라 한국>(1882)의 저자인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1843~1928)가 평생토록 외교사절과 선교사 등을 통해 수집한 자료다. 1927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선과 만주를 한달 동안 방문하기도 했던 그의 방대한 자료는 이듬해 작고한 뒤 모교인 뉴저지 주립 럿거스대학 도서관에 기증됐다. 원고만 250상자에, 수천장의 사진·지도·문서·희귀서 등이 포함됐다. 그의 컬렉션에 한국 자료도 많다는 사실은 럿거스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유영미 교수가 1999년 우연히 발견해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자료 상자를 열어 한국 자료를 모두 확인한 것은 2008년 양 교수 일행이 처음이었다.

“남편은 그때 미정리 자료 상자 10여개에 흩어져 있던 한국 사진 수백장을 찾아 꼬박 일주일간 카메라로 찍고, 뒷면에 적힌 그리피스의 손글씨 메모까지 하나하나 기록했어요. 귀국해서는 사진을 주제별로 분류하는 데도 꽤 오랫동안 공을 들였죠.”

2008년 미 럿거스대학 방문교수 시절 뉴저지주 블루마운틴의 호수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양상현(오른쪽)·손현순(왼쪽) 교수 부부.
마침내 2014년 12월 양 교수는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그리피스 컬렉션’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했다. 네이티브 영어 강사와 대학원 연구생들의 도움을 받아 정리한 한국 사진은 모두 586장이었고, 그 가운데 351장은 미공개 희귀 자료였다.

“그리피스가 1876년부터 1917년까지의 사진을 모아놓았으니 거의 100년 만에 근대 조선의 모습이 세상에 공개된 셈이죠. 맨 처음 눈길을 끈 1884년 무렵 남산에서 찍은 한양 도성의 전경 사진부터 한장 한장 의미를 확인할 때마다 짜릿한 전율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때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80년 만에 봉인을 풀던 순간’을 전율이라고 표현했던 양 교수는 이듬해 다시 안식년을 맞아 컬렉션의 한국 사진과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명성황후의 초기 가묘와 국장 사진을 비롯해 1887년 무렵 초기 태극기 사진, 서재필·박영효·김옥균 등 개화파 3인의 단발하기 이전 모습이 담긴 채색 사진 등등 발표 때마다 학계는 물론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책의 표지로 내건 ‘녹두장군 전봉준 압송 사진’은 가장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의 돌연한 사고사 이후 ‘컬렉션’은 또다시 서재에서 봉인 아닌 봉인의 시간에 잠겨야 했다.

“약대를 나와 근무하던 제약회사의 동료(훗날 시누이) 소개로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둘 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남편이 먼저 대학에 자리를 잡았고, 저는 남매를 키우느라 늦어졌죠. 마침 2015년 3월 교수로 임용돼 정신없던 와중에 남편마저 떠나니,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졌어요.”

그나마 아이들이 차례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안정을 찾은 그에게 남편의 유작은 ‘묵은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지난해 남편을 대신해 책 편집을 결심한 것은 이번에도 미국에서 보내온 유 교수의 제안과 조력 덕분이었다. 다행히 양 교수 생전에 출판 계약을 진행했던 눈빛출판사에서도 동의를 해줬다. 유 교수는 방학 때면 한국에 건너와 직접 편집작업을 도와 ‘공저자’로 출간이 가능했다. 지난 8월 유 교수가 럿거스대학에서 마련한 ‘그리피스 컬렉션 워크숍’에 초청받은 그는 책의 ‘가제본’ 30여권을 들고 참석해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미흡한 부분은 후학들 보완해주길”

새해 1월29일 출간기념회 겸 추모모임

손현순(왼쪽) 교수는 지난 8월말께 미국 럿거스대학에서 유영미(오른쪽) 교수가 마련한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사진’ 워크숍에 참석해 가제본된 책을 소개했다. 사진 손현순 교수 제공

지난 8월말 미 럿거스대학의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사진’ 워크숍에 참석한 한국학 연구자들이 유영미(앞줄 오른쪽 다섯째)·손현순(앞줄 오른쪽 네째) 교수와 함께 했다. 사진 손현순 교수 제공
유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지난 10여년간 ‘그리피스 컬렉션’의 정리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들은 연구자들에게 마치 광산에서 숨겨진 원석을 발굴하는 것처럼 열정과 동기를 부여해왔다”며 “1차 자료인 ‘그리피스 컬렉션’을 통하여 학문의 재미는 교과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성’에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남편이 부록에 남긴 글들은 미완의 상태 그대로 출간을 했다”는 손 교수는 “가제본을 보고 성곽길문화연구소 최철호 소장을 비롯해 관심있는 전문가들이 오류를 지적해준 덕분에 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아 후학들이 보완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제본 나온 날 꿈에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실컷 울었다. 이제는 그를 편안히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동안 도움 준 여러 분들과 함께 양 교수를 추모하고자 새해 1월29일 출간기념회를 연다고 전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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