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서울대 여성연구소 김신명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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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 연구원.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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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하면 여신 종교이겠죠.” 종교가 있냐는 질문에 김신명숙 서울대여성연구소 연구원이 내놓은 답이다. 그와 여신과의 만남은 14년 전으로 올라간다. “한국에 여신 담론을 처음 소개한 정현경 교수가 쓴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2002)를 2005년에 읽고 바로 여신에 꽂혔어요.”
그리고 8년 뒤 그는 국내 대학이 배출한 최초의 여신학 박사가 됐다. “처음엔 여신학으로 이름 높은 미국의 캘리포니아통합학문연구소(CIIS) 유학도 생각했어요. 한국에선 여신학을 공부할 곳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서울대에 문의하니 ‘들어와서 알아서 하라’고 하더군요.” 그는 2008년 서울대 여성학 협동과정에 들어가 5년 만에 ‘서구 여신담론과 관음여신의 대안 가능성’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사 전공자인 한정숙 교수가 지도교수였단다. 지난 6일 서울과학기술대 근처 카페에서 김신 연구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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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관음의 탄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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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 책 <여신을 찾아서>를 낸 데 이어 최근 <여성관음의 탄생-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을 출간했다. 둘 다 박사 논문이 토대가 됐다. 앞 책이 여신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내용이라면 최근 책은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추적했다.
“여신을 만나 내 생애 과업을 찾았죠. 한국 역사 속에서 여신신앙을 회복하는 것이죠. 제가 10대 후반부터 끌렸던 영성에 대한 답도 찾았고요.” 왜 여신일까? “내 몸과 내 존재가 신성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죠. 여신을 만난 뒤 내 몸에 대한 인식이 질적으로 달라졌어요.”
그는 여성주의 매체 <이프> 편집인을 지내고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등 여성주의 시각의 여러 책도 냈다. “페미니즘도 영성 쪽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요. 주변 영역이죠. 하지만 저는 페미니즘의 완성에도 영성이 필요하다고 봐요. 여신은 종교라는 말을 쓰지 않고 영성이라고 해요. 시민운동도 영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내 존재라는 근본적 질문과 그 운동이 맞닿아야죠. 운동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정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영성이란 뿌리가 있으면 더 깊고 강해집니다.”
여신 신앙은 성평등에도 중요하단다. “여성 몸을 몰래 촬영하는 것에 처벌을 강화했지면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신 신앙은 여성의 몸이 신성하고 창조력과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봅니다. 여자에게서 나온 남자 몸도 신성하다고 생각하죠. 불교나 기독교 같은 가부장 종교는 여자 몸을 하찮게 여깁니다. 특히 불교는 여성의 몸을 혐오하죠. 여성의 몸을 존중하려면 문화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가 보기에 여신은 선사 시대는 물론 역사 시대 초기까지 가장 강력한 신앙 상징이었다. “신라도 불교가 들어오기 전 중심 사상은 여신 신앙이었어요. 서술 성모나 운제 성모 등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토착신은 대부분 여성이죠. 고대 산신도요. 세계적으로 다 그래요.”
그는 “여신 신앙은 한마디로 자연”이라고도 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산 뒤 어머니의 우주적 자궁으로 돌아가 재생하는 거죠. 가장 과학적입니다. 물론 기복이나 물질만 추구한다면 잘못이죠. 가부장 종교가 들어오면서 여신은 풍요와 출산신 정도로 축소됐죠. 그건 여신의 극히 일부 기능입니다. 여신은 우주의 창조력과 생식력, 자연의 엄청난 힘의 상징이었어요. 특히 여근(여자 생식기)은 우주 생산력의 중요한 상징이었죠. 몸집이 거대한 설문대할망(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여신)을 보세요. 산을 만드는 엄청난 자연의 힘으로 여성적 신성을 표현했어요.”
이런 말도 했다. “가부장 종교는 이 세상이 무상하고 가치가 없다고 해요. 불교에서는 태어난 게 고통이라고 하잖아요. 이런 논리라면 세상에 어떻게 정의가 세워지겠어요. 환경 파괴도 엄청나고요.”
2005년 현경 교수 통해 ‘여신’ 흥미
2013년 국내 첫 여신학 박사 학위
“여신 만나며 내 생애 과업 찾아”
‘한국역사 속 여신신앙 회복하는 것”
박사논문 풀어쓴 저서 잇따라 펴내
“젠더 경계 넘나든 ‘관세음보살’ 탐구”
그는 최근 책에서 신라 고승 원효가 이룬 ‘불교의 대중화’를 한반도 토착 여신신앙이 가부장 종교인 불교에 밀려난 것으로 해석했다. “<삼국유사>에는 관음으로 나타난 여성 둘이 원효를 꾸짖는 설화가 나와요. 한 여성이 월경 수건을 빤 물을 바치자 원효는 더럽다고 엎지릅니다. 탄생의 신성함을 인정하지 않는 원효는 우주 만물의 생식력을 상징하는 월경 수건이 달갑지 않았어요. 이 설화는 불교적으로는 해석이 잘 안 되지만 여신 신앙에서 보면 딱 떨어집니다.”
그는 이 설화가 토착 신앙 세력의 원효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준다면서 <삼국유사> 등에서 나타난 ‘여성 관음’은 “외피적으로나마 불교와 타협할 수밖에 없던 여신 신앙의 운명을 보여준다”고 풀었다.
관음은 자비와 지혜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인 관세음보살이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남성으로 여겨졌지만 불교가 중국 등 동아시아로 전파하면서 ‘관음의 여성화’가 진행되었단다. 그러니까 불교 이전 강력한 여신 신앙의 전통이 불교와 만나면서 ‘여성 관음’으로 나타났다는 추론이다.
왜 관음에 주목했을까? “지난 50년 서양 여신운동을 보면서 젠더 이분법에 갇힌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신을 찾는 것은 긍정하지만, 여성만을 위한 신이 되어선 안 된다고 봤죠. 그건 기존 종교를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죠. 관음은 성이 변해요. 중생 구제를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젠더의 경계에 갇히지 않아요. 심지어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수호신으로 추앙받아요. 관음으로 젠더 이분법을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관음의 현실적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단다. “관음은 동아시아의 대표 신상입니다. 중국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 곳곳에 커다란 관음상이 있어요. 종교적 영향력이 엄청나죠. 여신 신앙의 전통이 남아서죠. 설문대할망이나 바리 등 우리 토속 여신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관음에게도 여성적 신성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신학 연구자 등 15명이 참여한 여신 그룹 ‘아카데미 할미’의 멤버이기도 하다. “할미는 우리말로 여신이라는 뜻도 있어요. 박사 이상 교수·연구자가 4분의3 정도 됩니다. 여성운동가나 여성영성주의자도 계시죠. 2016년부터 함께 여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여신학의 고전 두 권을 공동 번역했고 내년 봄에는 세번 째 번역서가 나옵니다. 여신학을 다룬 중요한 책인 캐롤 크리스트의 <여신의 재탄생>이죠.” 다른 여신 모임도 있단다. “2000년 지리산 여신축제를 열기도 했던 <이프> 기반의 모임도 있어요. 여기 회원들과는 계룡산과 제주도 여신 순례도 했어요. 제주와 지리산, 경주·포항 일대가 한국의 3대 여신 성지입니다. 계룡산을 더하면 4대 성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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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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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선 ‘제의’도 한단다. 어떻게 하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할머니들이 정화수(정안수)를 올리고 소원을 빌었잖아요. 입춘 의례 등 우리 민속이 대부분 여신 신앙 의식이죠. 계절 절기를 따라 많이 합니다. 줄다리기도 마찬가지죠. 동·서로 나뉜 줄의 고리가 암·수를 상징합니다. 여자 편이 이기면 그해는 풍년이라고 믿었어요.”
계획을 묻자 내년엔 스스로 안식년을 가질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대 박사 과정 입학 1년 전부터 올해까지 13년 동안 여신 탐구를 했어요. 내년은 한 해 쉬면서 한국의 여신 신앙 성지를 두루 둘러 볼 생각입니다.”
일본을 찾을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크다는 말도 했다. “일본은 토속신이 다 살아 있어요. 후지산 정상과 기슭에 토착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더군요. 토착신을 기리는 마을 축제도 많고요. 우리도 조선 시대만 해도 지리산 정상과 중턱, 기슭에 토착신을 모시는 상당과 중당, 하당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 사라져 국토가 신성성을 잃었어요. 후지산은 신성이 살아 있잖아요. 안타까워요.”
그는 지난 책에서 “첨성대는 여신상”이라는 주장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는 “석굴암 본존불은 원효불”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여신 신앙의 여러 상징을 들어 입증을 시도했다. 가설의 토대가 조금 성긴 것 같다고 하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엄청나게 큰 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 실증 사료가 없어 굉장히 무모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어요. 신라사나 불교사를 하는 학자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여신 상징으로 우리 여신의 역사를 추적하다 보면 첨성대가 그렇게 보이는 데요. 관음이나 석굴암도 그렇고요. 제 입장에서 말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는 첨성대는 여신상이 확실하다고 했다. “첨성대 관련 자료는 딱 하나입니다.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이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만들었다’는 내용만 나와요. 여신상으로 보지 않으면 첨성대의 네모난 입구가 자궁 위치에 있는 걸 설명할 수 없어요. 한국 토착 여신 신앙이 만들어낸 그릇받침도 첨성대 외양을 많이 닮았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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