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7 18:34
수정 : 2019.11.28 02:34
[짬] 웹소설가 변신한 예종석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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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을 연재중인 예종석 음식평론가가 18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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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 사회사업가, 음식평론가. 이 서로 다른 세가지 영역을 한 몸에 꿴 사람, 예종석(66·전 한양대 경영대학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또 한가지 이력을 덧붙였다. 소설가. 그것도 숨가쁠 정도로 몰아붙이는 빠른 전개와 속도감 있는 문장이 중요한, 즉 쾌필력(快筆力)이 핵심인 웹소설가다.
실화 소재 웹소설 및 르포 기획사 팩트스토리와 손잡고 지난달 말부터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망국의 요정, 명월관>(총 29화·완결)이 그의 첫 웹소설이다. 지난해 원고 계약을 맺고 구상에 들어간 그는 오랫동안 축적해온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집필을 시작해 지난 9월 원고를 마무리지었다. 세밑이 다가오며 ‘사랑의 온도탑’ 눈금 올리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예 회장이 왜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냈을까. 18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경영학자이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팩트스토리 손잡고 1년간 집필 준비
‘망국의 요정, 명월관’ 네이버 연재중
대한제국 궁중음식 담당 안순환 개업
조선 최초 근대 식당 ‘명월관’ 무대
“편견없이 살아온 보통사람들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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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이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으로 분주한 가운데 웹소설을 연재중인 예종석 작가.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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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은 대한제국 시기 궁중음식 담당기관인 전선사(典膳司)에서 일하던 안순환이 1903년 현재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자리에 세운 조선 최초의 근대적 식당이다. ‘청풍명월’에서 이름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기생들의 접대를 받으며 푸짐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요릿집이었다. 왜 명월관을 소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음식’ ‘경영’ ‘구한말’이라는 열쇳말이 답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 음식부터 최근 힙한 국내외 레스토랑까지 음식정보에 해박한 그는 안순환이 일군 ‘한식의 진화’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안순환은 기존 전래 상차림인 독상에서 벗어나 여럿이 함께 상을 받는 교자상 차림을 상업적으로 정립했습니다. 일각에선 안순환이 대령숙수(궁중의 남자 조리사)도 아닐 뿐더러 정통 궁중 한식을 훼손한 술집 사장, 궁에서 일하면서 자기 사업을 한 ‘투잡족’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하지만, 저는 안순환이야말로 궁중 요리의 대중화를 위해 식단을 개량한 뛰어난 음식 전문 마케터이자 경영인이라고 봅니다.”
소설에서 안순환은 왕실의 친인척이자 주불 공사를 지낸 민영찬으로부터 프랑스혁명으로 황제에게 복무하던 요리사들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 식당을 차리게 되는 과정 및 프랑스의 선진적인 음식문화를 전해듣고 명월관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는 ‘황제가 먹던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명월관을 홍보하면서 황실의 쇠락으로 궁에서 잘린 숙수와 궁녀, 관에서 실직한 기생과 악공을 불러 모아 손님을 맞았다.
예 회장은 “국물 맛이 오묘하고 깊어서 임금의 입맛을 사로잡던 신선로(열구자탕)” “예술작품 같이 아름다운 데다 맛도 좋은 구절판” “얼음이 귀한 계절, 권력자의 음식인 냉면” “무 외에 배추 속대와 버섯, 밤, 배와 해물까지 들어간 호화로운 깍두기 송송이” 등 안순환이 명월관에 내놓은 메뉴를 소상하게 묘사하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명월관의 흥미로운 메뉴 중 하나가 이름만으로도 손님들을 사로잡은 ‘고종 냉면’이다.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동치미 국물로 말아서 내놓은 것인데, 소설에선 고종이 모래가 든 홍합을 씹다 치아가 부러지는 황당한 일을 겪자 안순환을 불러 밤참으로 냉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예 회장은 이 대목에서 술을 먼저 마신 뒤 국물로 속을 푸는 ‘선주후면’을 언급하며 술꾼들을 자극한다. 그는 상상력을 버무려 음식과 관련된 ‘있음직한 에피소드’도 넣었다. 가령 고종이 변복을 하고 명월관에 잠행해 민영찬 주불 공사, 플랑시 주한 프랑스 공사와 함께 ‘스위스 열구자탕’(퐁듀 요리)을 시식하는 장면 등에선 당시 조선에 일어나고 있던 서구 문물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 있다.
예 회장은 일제가 조선을 집어삼키기 직전의 구한말이라는 ‘뜨거운 시대’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일본·러시아·청나라 등 열강에 협력한 사람들,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사람들, 신식 문물을 재빨리 받아들인 사람들, 전통에 매달린 사람들 등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명월관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니, 이 격변기를 조명할 수 있는 좋은 무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순환 역시 복잡한 시기를 헤치며 살아갔기 때문에 복합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종에 대해 인간적 충성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업·금전관계 때문에 악질 친일파 송병준과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일본 요릿집 경영 방식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조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죠. 저는 예전부터 영웅의 역사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편견 없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 안순환의 삶을 통해 한반도 근대사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이 소설에선 기생 출신으로 천한 대접을 받았지만 재능과 용기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 매력적인 여성들이 여럿 등장한다. 예 회장은 이 가운데 천도교 교주 손병희와 명월관에서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렀던 기생 출신 주옥경(기명 주산월)에 대해 애정을 피력했다. “주산월은 다동기생조합을 만들어 기생들의 권리 신장에 힘썼고, 남편이 옥고로 세상을 뜬 뒤에도 천도교 활동과 여성계몽운동을 벌였습니다. 우리가 좀더 주목해야 할 여성 선각자이지요.”
그는 “평소 종이책 소설에 익숙했기 때문에 스토리를 응축해 간단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는 웹소설 형식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이번엔 안순환이 명월관의 후신인 식도원을 세계적인 외식산업으로 키우려고 마음 먹는 1928년까지만 다뤘는데 그 이후에도 송병준 뺨 치는 악질 친일파 박춘금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명월관이 최종적으로 문을 닫는 1948년까지의 역사를 더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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