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0 16:24
수정 : 2019.11.11 02:06
[짬] 중국 옌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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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호사카 유지 교수와 옌즈 시인, 도종환 시인 그리고 사회를 맡은 티엔위안 교수.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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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도종환 의원실에서는 이색적인 모임이 있었다. 모인 이들은 방 주인인 도종환 의원을 비롯해 중국 시인 옌즈와 티엔위안,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등이었다. 옌즈의 시집 <소년의 시>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한성례 옮김, 황금알 펴냄) 그 시집으로 그가 문예지 <문학청춘>이 주관하는 제1회 문학청춘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축하 인사를 겸해 대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옌즈는 시인이면서 중국 기업 순위 22위인 줘얼 그룹 회장이기도 하다. 역시 시인이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도 의원과 일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교수가 그와 만나 한·중·일 세 나라의 문학과 문화, 역사와 현재 관계 그리고 미래 전망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시집 <돌의 기억>(한성례 옮김, 자음과모음)이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중국 시인 티엔위안 일본 도호쿠대학 중문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티엔위안은 “옌즈는 1970년대에 태어난 중국 시인 중 가장 먼저 시집을 출간했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집을 낸 시인”이라며 “그의 시 세계는 추억과 소년 시절의 기억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을 두루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옌즈는 “시집이 번역 출간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며 “특히 한국의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런 모임을 열게 되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은 “지난해 9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만났던 옌즈 시인을 서울에서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며 “시집 <소년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뜨인 것은 ‘소년’의 존재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소년’이라든가 ‘소년의 시’ 같은 시들을 읽다 보면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에 나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기업을 하면서 시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텐데 옌즈 시인 내면의 이 소년이 시인에게 계속 시를 쓰게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도 의원은 “저 역시 정치를 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데, 내 마음속 소년이 저로 하여금 계속 시를 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이 옌즈 시인과 저의 공통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사카 교수는 “옌즈 시인의 시는 순수함을 깊이 느끼게 하고, 어려운 말이 없는데도 읽는 이의 마음에 와닿는다”며 “정치학자로서, 특히 위안부 문제와 난징 학살 같은 한·중·일의 역사와 정치적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옌즈 시인이 앞으로 사회적 문제에 관한 시도 많이 쓰시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대담에 동석한 번역가 한성례 시인은 “옌즈 시인이 자신의 자화상인 소년을 불러내어 대화하고 격려하며 위로받는 모습이 부러웠다”며 ‘검을 짊어지고 떠난 소년의 시적 탐구 여행’이라는 옮긴이 해설 제목을 소개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1회 문학청춘세계문학상 수상
시집 ‘소년의 시’ 번역 출간도
9일 도종환·호사카 유지와 대담
중 기업순위 22위 줘얼 그룹 회장
“시적 상상력이 사업에도 도움”
도 의원이 “시도 정치도 사업도 연민에서 출발하는 것이니만큼 그 연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옌즈 회장도 “저 역시 연민의 마음을 품고 고향과 향토와 생태를 생각하는 시를 쓰려 해 왔다. 시집 <소년의 시>에서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보듬어 보고자 했다”고 화답했다. 그는 “사람들은 저에게 시인이자 사업가라는 서로 다른 직업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캐릭터를 전환시키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지를 종종 묻는다”며 “그러나 나는 자유자재로 캐릭터를 전환시킨다. 가령 낮에는 베이징에서 기업가들과 만나 도시에 관해 얘기하고 저녁에는 베이다오, 수팅, 티옌위안 같은 시인들과 만나 문학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런데 도 의원님은 정치와 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도 의원은 “저도 시와 정치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다”며 “이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시심을,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을지 늘 고민한다. 왜냐하면 연민이 사라지면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 시 중에 쓰촨성 지진을 보고 쓴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집들이 무너지는 엄청난 재난의 한복판에서 갓난아이를 구해 달려가던 여자 경찰이 돌더미 위에 앉아 젖을 물리는 장면을 보고 강한 감동과 충격을 받아 쓴 시 ‘젖’이 그것입니다. 그 여경의 행동이야말로 연민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이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임을 파악하는 것이 시와 시인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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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즈 시인의 말을 다른 대담 참석자들이 듣고 있다. 김경호 선임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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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옌즈가 자신도 쓰촨성 지진을 보고 쓴 작품이 있다고 소개했다.
“도 의원님이 쓰촨 지진에서 어머님을 발견했던 것처럼 저 역시 폐허 속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구해 내는 장면을 보고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시는 마음속의 일이고 정치나 사업은 겉의 일이니, 우리 두 사람은 안팎을 오간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처지인 것 같습니다. 시와 사업이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사람들이 제게 묻는데, 저는 제 사업에 시적 상상력이 도움을 준다고 대답합니다.”
도 의원이 지난해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모임을 소개하며 세 나라 관계에서 문화가 지니는 중요성을 역설하자 호사카 교수가 거들었다.
“저의 연구도 그렇고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중·일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한국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가 대단히 중요하죠. 오늘 대담에서도 느꼈지만, 시란 변화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는 쉬운 말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마음의 평화에서 출발해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평화까지 이룰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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