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3 19:58
수정 : 2019.10.24 02:04
[짬] 순천대 여순연구소장 최현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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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순천대 여순연구소장을 맡아 ‘여순항쟁’ 피해자 증언 채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최현주 교수. 사진 순천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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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 그 이후 유족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을 역사에 한 줄이라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천대 여순연구소장 최현주(53·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여순사건 71돌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 착잡한 심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여순연구소는 2014년 센터로 시작해 지난해 연구소로 정식 출범했다. 그는 소장을 맡아 2년째 여순항쟁의 증언을 채록하고 발간하는 작업을 이끌고 있다. 지난 5월 유족 14명의 구술을 담은 첫 증언집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가 나왔다. 우선 1000부 비매품으로 냈다. 이어 내년 초에 내놓을 두번째 증언집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부터 여수·순천 유족들 만나
첫 증언집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
“70여년 강요된 ‘침묵’ 들어만줘도 치유”
군경 유족·목격자·공무원 등도 채록
‘사건 실체’ 접근…역사적 기록 ‘중요’
“특별법 제정 서둘러 국가가 맡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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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연구소에서 펴낸 첫 증언집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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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은 아직도 ‘반란’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공식 역사도 그렇지만 국민 시선도 비슷하지요. 유족들은 여태껏 마음 속 상처를 드러내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왔어요. 오랫동안 대학 울타리 안에서 지역민의 아픔을 외면해오지 않았나, 하는 자책과 반성으로 채록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난해부터 연구원 7명과 함께 녹음과 영상, 사진 등으로 채록을 하고 있다.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며 유족 130여명의 구술을 기록했다. 이를 정리한 보고서를 내고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추려 두번째 증언집에 담을 예정이다. 피해지역이 워낙 넓어서 유족의 증언을 채록하는 데만 4~5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족들은 한서린 증언을 하며 눈물을 쏟기 일쑤고, 채록자도 따라 울 때가 많아요. 구술을 마친 유족들은 침묵을 강요당해왔던 인생 내력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인정받는 것 같다고들 고마워하죠. 그래서 채록은 개인사를 공식 역사로 편입하는 과정이면서 유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3살 때 부모가 모두 학살당한 뒤 살아낸 세월이 너무 신산스러워 “뒤로 돌아가라 하면 절대로 못 간다”는 유족 이숙자씨, 25살 아버지가 아내에게 “손시렁께 얼릉 들어가소,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유족 조선자씨의 사례를 소개하며 “아프지 않은 사연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우선 여수와 순천의 유족회원을 중심으로 채록중입니다. 올해부터는 마을 이장의 소개를 받아 대상을 선정하고 있어요. 피해자뿐 아니라 군인과 경찰 유족, 목격자와 공무원 등도 채록해 ‘사건’의 실체에 한발 다가가려 합니다.”
그는 70년 넘도록 여순항쟁에 이념의 굴레가 씌워진 탓에 증언 채록 작업도 늦어졌다며 조급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여수의 지역사회연구소가 1990년대 후반, 순천의 전남동부사회연구소가 2000년대 들어 채록에 나섰다. 하지만 예산·인력의 한계로 중단했고, 그 성과도 출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국가적 차원의 증언 채록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마찬가지 국가폭력 피해 사건인 ‘제주 4·3’과 ‘광주 5·18’은 특별법이 제정됐다며 여순사건 특별법안을 미루고 있는 정치권에 화살을 돌렸다. “채록사업은 정부가 법률적 근거, 인력과 예산을 갖고 진행해야 하는데도 오죽하면 지역 대학이나 시민단체에서 나섰겠냐”고 토로했다.
“권력자들은 아직도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해요. 유족들마저 모두 돌아가시면 더는 채록도 치유도 불가능하게 되니까요.”
그는 정부와 국회가 눈을 감고 있어서 여순연구소가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고도 했다. 그는 현대사 연구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얻고,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업에 정성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진상규명은 어렵다해도, 피해자들의 희생과 불행을 어루만지고 보상하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로 71돌을 맞은 여순항쟁에 대해 그는 “해방 직후 민족적 계급적 모순이 충돌하며 발생한 비극이다. 다른 사건보다 중층적 구조와 다양한 담론이 존재한다. 민중생존권, 외세간섭, 좌우갈등, 남북통일 등 한반도를 옥죄고 있는 모순들이 해결되는 날 ‘여순’은 항쟁이나 봉기, 통일운동의 기원으로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4년부터 순천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지역연구에 초점을 맞춘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장을 지냈고, 현재 전국교수노조 광주전남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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