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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22 15:34 수정 : 2017.10.22 15:37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바른정당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유승민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167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국면 유승민 발언 논란 증폭
햇볕정책 포기 요구, 국민의당 호남의원 자존심 상처
‘대북강경론’-‘호남왕따’는 분단세력의 정치적 발명품
‘한반도 평화’-‘저항적 지역주의’ 분리 안되는 동일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바른정당 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유승민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거제도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논의가 갑자기 불거진 것은 10월18일치 <조선일보>를 통해 공개된 국민의당 비밀 여론조사 결과였습니다. 지지도 6.4%의 국민의당과 6.8%의 바른정당이 통합하면 지지도가 19.7%로 올라 6.5%포인트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 대해 안철수 대표는 “그게 민심 아니겠냐”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바른정당과 통합하고 싶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대선 패배 이후 당대표로 복귀한 안철수 대표는 지금 절박한 상태입니다.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국민의당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당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40석의 국민의당 지지도가 20석의 바른정당 지지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대로 가면 당대표로 복귀한 명분이 사라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지지도가 낮아 힘든 것은 국민의당 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당 의원들은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의원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자강파’를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40명 가운데 30명 정도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찬성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이 묘한 발언을 하면서 통합 흐름이 삐걱대고 있습니다. 유승민 의원이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질문 :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합치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국민의당 내부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응답 : 국민의당 안에서도 개혁보수라는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안보 상황에서 과거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한 안보를 지지하겠다고 하면, 또한 특정 지역에만 기대는 지역주의를 과감히 떨쳐내겠다고 한다면 그런 분들과 통합 논의를 못 할 이유가 없다. 우리 원칙은 분명하다. 개혁보수라는 가치에 동의하는 이라면 자유한국당이든, 국민의당이든 가리지 않고 열려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이 원칙을 지키면서 통합 논의를 해야지 그저 선거 앞두고 숫자 올리는 방법이나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급할 생각도 없고 서두를 생각도 없다.

“과거 햇볕정책을 버리고”라는 대목과, “특정 지역에만 기대는 지역주의를 과감히 떨쳐내겠다고 한다면”이라는 대목이 눈에 확 뜨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지원 의원이 다음날 트위터에 유승민 의원을 반박하는 글을 띄웠습니다.

“국민의당에 햇볕정책과 호남을 버리라는 요구는 유 대표께서 먼저 강경대북정책과 영남을 버리면 됩니다. 서로의 정체성이 있고 길이 있다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드릴 수 없는 요구는 안 해야 합니다.”

천정배 의원도 트위터에 글을 띄웠습니다.

“아무리 지지율이 바닥을 친들, 목욕물 버리며 애까지 버릴 수 있나요? 국민의당에게 햇볕정책이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소명입니다. 국민의당에게 호남이란 개혁 정신의 본산이요 생명을 준 어미 뱃속입니다. 존재기반을 내주고 얻을 것은 없습니다.”

정동영 최경환 의원, 정대철 고문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호남 지역주의에서 탈피하라는 유승민 의원의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른정당과 통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철수 대표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안철수 대표도 1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질문 :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양당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주의 포기’를 언급하고 있다.

응답 : 대북정책에 있어 한쪽은 강경책만 있고, 반대편은 온건책만 있다. 그게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념의 틀에 갇혀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우리가 바라는 게 북한 핵이 전쟁 없이 해결되는 거 아닌가. 그걸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미국과의 튼튼한 한·미 동맹, 국제공조 강화, 대북 압박이다. 그런데 압박해서 망하게 하자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압박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협상·대화를 하자는 데 있다. 상황에 따라 강온 양쪽을 다 써야 한다는 거다. 어떤 정책은 절대로 안 맞다, 딱딱 구분 짓고 적과 동지를 나누는 사고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답변은 길지만 질문의 핵심을 이리저리 피해가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호남 지역주의를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유승민 의원의 통합 조건과 국민의당 내부의 반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일 오후 <머니투데이>의 보도가 불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유승민 의원 쪽이 안철수 대표에게 양당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박지원 전 대표 배제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또 주말에 안철수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직접 만나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유승민 의원은 즉각 공식 입장문을 통해 “안철수 대표에게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박지원 의원의 출당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저와 안 대표가 곧 만날 것이라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평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유승민 의원의 스타일로 미루어 박지원 의원의 출당을 요구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은 박지원 의원과 당을 같이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인 22일 오후 유승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 통합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밝혔습니다. 그는 “정치 철학과 노선이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결사체가 정당”이라며 “바른정당이 가고자 하는 개혁보수의 길을 같이 가겠다면, 누구든, 언제든 환영하지만, 개혁보수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정당을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개혁보수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승민 의원은 “대선 이전부터 국가안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수차례 말씀드렸다”고 답변했습니다. 개혁보수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남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지역주의든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저 자신이 대구에서 4선을 한 국회의원이지만 영남 지역주의에 함몰된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박지원 의원과는 당을 함께 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입니다.

박지원 의원은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출당을 요구했다는 기사에 대해 20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주제넘은 망언입니다. 햇볕정책은 많은 국민이 적자입니다. 또한 유승민 전 대표는 이로써 합당의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안철수 대표께서 슬기롭게 대처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지원 의원의 말대로 이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은 안철수 대표의 의지와 역량에 달린 것 같습니다.

첫째, 유승민 의원의 요구대로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호남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겠다고 과감하게 선언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박지원 천정배 의원 등의 거센 반발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둘째, 당내 반발을 현실로 수용하고 통합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대표로서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박지원 천정배 의원 등 호남 중진들이 햇볕정책 및 호남 지역주의 포기 요구에 대해 이렇게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요? 최근 상황을 지켜보며 저는 유승민 의원이나 안철수 대표가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주의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화해정책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 등 과거 정권에서 추진했던 대북화해정책을 계승해서 시대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것입니다.

햇볕정책은 막연한 유화책이 아닙니다. 햇볕정책의 첫 번째 원칙은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햇볕정책은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대북정책입니다. 햇볕정책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은 오랫동안 분단체제를 구축하고 안보를 명분으로 독재했습니다. 안보를 내세워 돈을 벌었습니다.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 언론, 재벌, 관료가 틈만 나면 전쟁불사 대북강경론을 펴고, 햇볕정책에 대해 ‘퍼주기’라고 공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호남 지역주의는 정확히 말하면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입니다.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영호남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호남을 차별했습니다. 호남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압했습니다.

이제 맞서 등장한 것이 바로 호남의 지역주의입니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저항적 지역주의이고, 영남의 지역주의는 패권적 지역주의입니다. 영남 사람들은 듣기에 불편하겠지만, 정치적으로, 또 역사적으로는 그게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요직에 호남 사람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습니다. 호남에서 ‘인사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왜 호남 사람들이 다 해 먹냐”는 불만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거의 40년 동안 영남 사람들이 정부 요직을 거의 독식했고, 이명박-박근혜 10년 동안 영남 편중 인사가 되풀이됐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호남 편중 인사는 과거 영남 편중 인사의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반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햇볕정책과 호남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묶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호남에서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가 뭘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이기 때문일까요? 그게 다가 아닙니다.

햇볕정책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한반도 정책입니다. 따라서 분단세력에 의해 수십년 동안 정치적 탄압을 받은 호남은 본능적으로 햇볕정책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호남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것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분단 기득권 체제를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일맥상통하는 일인 것입니다.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이 1년 전 총선 때와 달리 안철수 후보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것도 문재인 후보가 햇볕정책을 더 확실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 주위의 호남 출신 식자층 중에서는 대선후보 토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가 “햇볕정책에도 공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전쟁 위기 조장, 햇볕정책 비판, 영호남 갈등 조장, ‘호남 왕따’는 본질적으로 분단체제에 기생한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발명품이었습니다.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 한반도 평화 정책인 햇볕정책은 분리할 수 없는 동일체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에게 햇볕정책을 포기하고 호남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정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바른정당 의원 일부가 탈당해서 자유한국당으로 가고, 11월13일 바른전당 대회에서 유승민 의원이 대표로 뽑히고 그 뒤에 통합 논의가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합집산은 일상사입니다. 정계개편은 정치인들의 선택입니다. 어차피 국민은 다당제를 선호합니다. 호남에서도 국민의당 인기가 뚝 떨어졌지만 호남 유권자들은 경쟁하는 두 개의 정당이 존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바른정당이 교섭단체의 지위를 잃게 될 경우 국민의당과 손잡고 제3의 정당을 구축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개혁적 보수를 표방하는 세력과 극중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손을 잡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지역적으로 영남과 호남에 동시에 기반을 가진 정당이 생기는 것도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햇볕정책과 호남 지역주의 포기를 통합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가치관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명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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