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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3 14:43 수정 : 2019.01.24 12:37

웹드라마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에 출연한 배우 성훈. 드라마 스틸컷.

배우 성훈, 이주연, 송하윤 등 드라마 출연료 여전히 못 받아
대법원 지난해 10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인정했지만
임금에 해당하는 출연료 등 노동조건 문제는 근로기준법 적용해야

웹드라마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에 출연한 배우 성훈. 드라마 스틸컷.
#1.

최근 문화방송(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친근한 모습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성훈은 지난해 웹드라마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에 출연했다가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했다. 이 드라마는 옥수수에 공개되면서 7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지만, 드라마 제작사 공동대표가 투자금만 받고 잠적해 버렸다. 성훈의 소속사 스탤리온엔터테인먼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출연료 가운데 1억5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계약대로라면 지난해 9월 지급이 완료되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제작사인 와이지(YG)스튜디오플렉스와 얘기 중이며,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과 드라맥스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마성의 기쁨>에 출연한 배우 송하윤. 드라마 스틸컷.
#2.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과 드라맥스 채널에서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방영한 드라마 <마성의 기쁨>에 출연한 배우들도 주연 배우 2명을 빼고 대부분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다. 제작사 쪽은 드라마 방영이 끝난 뒤 “2018년 안에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노)는 “이 드라마에 출연한 조합원들이 받지 못한 출연료는 5000여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하임’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주연씨의 소속사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는 “출연료를 단 한 푼도 못 받았다”며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도리는 다 하겠다”고 말했다. 제이와이피(JYP) 엔터테인먼트도 “배우 송하윤과 강윤제가 출연료를 전액 못 받았다”며 “민형사 관련 모든 법적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가 한류 열풍 등으로 국제적인 시장으로 시청권이 확대되고 있지만, 배우들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법원에서 배우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까지 나왔지만, 현실에서의 제도 변화는 여전히 더딘 상태다.

드라마 업계에서는 드라마가 방영된 뒤에 출연료를 지급하는 게 ‘관례’다. 출연료 미지급 문제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촬영 노동을 다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 중단 등으로 항의할 수단을 찾기 어렵다. 이 때문에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준출연계약서를 마련해 연기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단서조항을 담았다. 예를 들어, 총 출연료는 ‘회당 출연료 X 출연 횟수’로 계산하는데 단서조항으로 “기촬영분에 대해서는 100%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게 한 것이다. 촬영을 완료했지만 편집으로 방송이 안 된 촬영분에 대해서도 출연료를 지급해야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용되는 계약서를 보면 대부분 이런 조항은 빠져있다. 연기자가 원하는 표준출연계약서가 제대로 이행된 건 1건도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송창곤 한연노 대외협력국장은 “표준출연계약서는 권고사항일 뿐이라 실효성이 없다”며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한연노는 배우들 역시 사실상 노동자라는 점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해 10월12일 대법원 3부(조희대 대법관)는 한연노가 교섭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4400여명의 방송 연기자가 소속된 한연노가 2012년 한국방송공사(KBS)와 출연료 협상을 진행하던 중 중앙노동위원회는 “연기자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별도의 단체교섭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적이 있어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탤런트·성우·코미디언·무술연기자 등 방송 연기자도 ‘노동조합법의 근로자’에 해당하며, 이들이 조직·가입한 단체 역시 독자적인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연기자는 고정된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 장소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사가 정한 시간과 장소의 구속을 받고, 연기라는 형태로 노무를 제공하며 그 대가로 출연료를 지급받는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배우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고 해서 해결책이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조건 등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다. ‘임금’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받지 못한 연기자가 이를 구제받으려면 개별 소송을 진행하거나 노동청에 가서 임금체불 진정을 내는 방법밖에 없는데, 근로감독관이 ‘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제작사에 지급 명령을 내리거나 혹은 형사처벌을 할 수 있으려면 우선 연기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기주 변호사는 “연기자로 일했는데 돈을 안 줬다면 별도의 민사소송은 가능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나는 근로자’라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면 이곳에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지 않으냐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배우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다. 진창수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기본이 퇴직금, 연차 휴가 등인데 연기자들에겐 어려운 조건”이라며 “연기자는 본인이 직접 계약할 수도 있고, 용역업체 등 어딘가에 소속돼 계약할 수도 있다. 매일 하루짜리 계약을 맺을 수도 있고, 촬영 기간 전체를 계약할 수도 있다. 워낙 계약 구조가 다양하다 보니 연기자들의 근로자성을 획일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기준을 완화하는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대중 노무사는 “유명 연기자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연기자의 1년 평균 소득이 천만원이다. 제작사에서 나 몰라라 하면서 이 돈마저 지급이 되지 않으면, 이 체불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전통적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인정 기준은 제조업 중심이라서 인정 범위가 좁다. 이 기준을 보다 폭넓게 해석하지 않으면 법적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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